매일신문

야고부-현인 '달밤'을 두고…

한국 문화를 조망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대중음악이다. 1926년 일본 오사카의 이토레코드사가 발매한 윤심덕의 '사(死)의 찬미'가젊은 남녀의 동반자살이라는 화제를 낳으면서 우리 음반시장의 문을 열어 젖힌 뒤 이 땅의 대중음악은 꽃을 피웠다.

그 주류는 일본 엔카에뿌리를 둔 트로트였다. 우리 민요와 판소리를 위협, 대중음악 시장의 중심에 떠오르면서 1930년대 중반 남인수 이난영 등의 걸출한 가수를 낳았다.광복 후 대중음악은 현인과 같은 슈퍼스타가 가세함으로써 한층 위세를 떨쳤다.

▲성악을 전공하면서 정통 음악도의 길을 걸은 '가요 1세대'로 꼽히는 현인(본명 현동주)은 기존 가요와 달리 서양 성악에 바탕을둔 색다른 창법으로 트로트에 익숙한 팬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약간 치켜든 턱을 떨며 음절음절 끊어 부르는 그의 창법은 두고두고 모창될 정도로 독특하다. 오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애창되는가 하면, 신세대들에게까지 뚜렷이 각인돼 왔다.

▲1919년 부산에서 태어나 경성 제2고보(현 경복고)와 일본 우에노음악학교(현 도쿄예대)를 나온 그는 일제의 징용을 피해 한때 중국상하이에서 샹송과 칸초네를 부르며 가수 활동을 했다. 광복 후 '성악을 전공한 음악도가 유행가를 부를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작곡가박시춘씨의 권유에 못이겨 '신라의 달밤'을 취입, 일약 스타가 됐다. 1947년에 부른 이 노래는 평생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으며, '고향 만리''비 내리는 고모령' 등이 잇따라 히트했다.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 등 질곡의 현대사를 겪은 우리에게 그의 노래들은 가슴을 아리게 하고 위무해 주는 민중의 정서와 밀착해 있어 공감대를 넓혀 왔다. 그 역사적 질곡을 체험한 구세대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경상도 억양과 발음이 다소 뒤섞인 독특한 창법의 히트곡 몇 곡 쯤은 모르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특히 '굳세어라 금순아' 등 일련의 노래들은 고향을 등지고 월남한 실향민들에게 '눈물의 세레나데'로살아 숨쉬고 있다.

▲우리 가요계의 거목으로 누구보다도 노래를 향한 열정이 뜨거웠던 그는 83세를 일기로 13일 이 세상을 떠났다. 평생 동안 남긴 노래는 '굳세어라 금순아' '꿈속의 사랑' '베사메무쵸' '서울 야곡' 등 1천여곡에 이른다. 대구 파크호텔 입구에는 '비 내리는 고모령' 노래비가, 경주불국사 인근에는 '신라의 달밤' 노래비가 서 있다. 그는 이제 떠났지만 현대사의 질곡을 그린 그의 노래들은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하고 실의와 절망을 위무하면서 오래오래 남아 숨쉴 것이다. 명복을 빈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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