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잘하고 얼굴도 잘 생긴 준석이가 어느 날 나를 찾아왔다. 인사도 없이 거두절미하고 '점수 틀렸는데요', 내가 물었다. '무슨 과목이냐?' '작문요' '얼마나 틀렸느냐?' '5점요' '몇 점이 내려갔느냐?' '98점이 93점요' '시험지를 가져 왔느냐?' '예'나는 그만 짜증이 났다. 태도가 불순한 것은 아니었으나 자기가 볼일이 있어 찾아와 놓고는 묻는 말에만 한 가지씩 대답하는 점 때문이었다.
서울 아이 같았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제 시험 점수가 이상해서 확인하러 왔는데 선생님 귀찮으시겠지만 좀 봐 주세요" "음, 그래 어떻게 틀렸지?" "예, 제가 생각하기에는 제 점수가 98점인데 점수는 93점이 나왔걸랑요. 제가 시험지를 가져왔으니 다시 채점해 보게 답지 좀 보여주시겠어요?" "응, 그래". 하면서 나는 기분좋게 답지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왜 경상도, 특히 대구 아이들은 말을 못하는가? 생각이 부족한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공부를 못하는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10년 전쯤 고3 담임을 할 때, 서울의 선배집에 간 적이 있다. 내 선배 딸인 강남 8학군 아이의 성적표와 내 반 아이들의 성적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다. 꼼꼼히 비교해 보았지만 뒤지기는커녕 더 앞섰다.
물론 대구 아이들이 학업 성적에 비해 표현력이 뒤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은 여러 역사적 이유와 문화적 지리적인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표현 능력이 경쟁이 되는 시대이다. 경상도, 특히 대구 출신자들이 입사 시험에서 밀리고 대입 면접에서 탈락하는 것이 꼭 지방 출신이라 그럴 것 같은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흔히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은 어진이가 적으니 경계하라'는 유가적 가르침을 신봉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교언영색하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므로 이런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정교한 표현과 아름답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낯빛. 이게 얼마나 좋은 인상을 주겠는가. 경상도의 젊은 어머니들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다. 첫째, 아이들을 수다쟁이로 기르자. 둘째, 아름답게 꾸민 낯빛을 갖도록 어릴 때부터 훈련시키자.
경북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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