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도산서원 여성 참배

널리 알려진 대로 서원(書院)과 향교(鄕校)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서원은 사립학교이고 향교는 공립학교라 할 수 있다. 조선조(朝鮮朝)에서 현(縣)을 설치한 소재지에 '교동(校洞)'이라는 마을 명칭이 지금도 남아있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향교가 들어섰다.

향교는 유학 교육기관이나 서원은 사설교육기관 기능과 함께 지방 사림(士林)들의 집합장소 역할도 했었다. 따라서 향촌(鄕村)의 자치운영기구 기능이 서원의 중요기능이기도 하다. 지역의 정치적·사회적 여론의 풍향(風向)도 좌우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교육기관은 여성들의 수강은 금지된, 남성들의 전유물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도산서원이 여성들의 공식참배를 허용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전통서원의 공식행사에 여성들의 참배가 허용된 것은 형식의 타파다.

퇴계 선생의 후손과 제자들의 모임인 도운회와 유림(儒林) 모임인 대당회는 최근 이같이 결정하고 교사와 학생들의 현장 학습의 장(場)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키로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퇴계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수제자 월천(月川) 조목(趙穆) 선생이 종향(從享)된 상덕사(尙德祠)에는 여성들의 출입이 엄격하게 통제돼 있었던 만큼 이번 결정은 일대 전환이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직접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도산서당(書堂)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대제학에서 물러난 후 고향인 안동 도산으로 돌아와 도산서당과 제자들의 기숙사인 농운정사를 짓는다.

도산 서당은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4년만인 1574년에 유림과 제자들이 서원을 세우고 선조(宣祖)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려줘 전국의 유림이 주목하는 서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도산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때에도 존속한 서원으로 선산의 금오선원 등과 영남 유림의 중심지 역할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서원은 단순한 회합장소가 아니라 조선조 선비들의 기상이 쌓여 있는 정신적 공간이다. 이런 터전에서 선비들의 제일의 목표는 인격도야가 아닌가 싶다. 퇴계 선생은 몰염치하거나 덕이 없는 행위를 하는 선비는 도산서원에 들여 놓기를 꺼렸다.

덕성(德性) 배양이 선비의 으뜸 덕목이라는 간접 가르침이다. 지식은 그런 대로 쌓았어도 도덕심을 상실한 듯한 못난 남성들을 깨우치는 상대는 아무래도 여성이 제격일 성싶다. 여성들의 서원 참배가 남성들에게 자극을 주면 우리의 인성 교육은 더욱 승화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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