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세기 개화 격변기 민족명운 일깨운 선각자

나라의 운명이 어지러워졌을 때 젊은이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당장 실의에 빠진 현실에 뛰어들어 개선의지를 펼 수도 있고, 보다 넓은 안목으로 광활한 세계에서 얻은 선진 정보로 민족을 자각케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경상도 영덕지방의 선비 하산 김한홍(1877~1943)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하산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6년간(1903~1908)의 미국생활 체험기를 담은 가사 '해유가(海遊歌)'를 지었다. '서유가'(西遊歌)라고도 불리는 이 가사는 나라의 명운이 경각에 달린 격변기를 맞은선비의 번민과 고뇌 그리고, 은둔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던 선각자의 모습이 명료하게 담겨 있다.

그런 하산을 기려서 지난 13일 고향인 영덕 삼사해상공원 안뜰에 해유가비가 세워졌다. 문학비 건립동호회가 서포김만중 문학비(대전 유성구),허난설헌 시비(경기 광주시), 김삿갓 시비(강원 영월) 등에 이어서 49번째로 건립했다. 권두환.조동일.윤석산.이동영 등 외지교수 등과 대구권 권영철.김주한 .윤영옥.신귀현.장윤익.김상규.이장우.홍재휴 교수, 신경림.오민필.오윤필 등 문인과 서예가를 포함한 120여명이 십시일반 성금을 냈다.

한양대 박노준 교수는 "왕조 붕괴의 비극과 개화의 충격을 함께 맞으며 개막된 한반도 20세기의 체험을 국내와 해외에서 두루 겪고 가사로 쓴게 바로 해유가로 문학이면서 역사의 기록물"이라고 비문에 썼다.

비 건립추진본부장 이용태(삼보컴퓨터 회장)씨는 "해유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미국 기행가사일 뿐만 아니라 근대화에 대한 동경과 소망을 문학적 형식을 빌려 풀어낸 일종의 사회비평문"이라며 "1백년전 근대화에 뒤져서 감수해야했던 그 수난의 악몽이 제2개화기인 정보화시대에 되살아나는 것 같다. 하산이 걸었던 고통과 좌절의 세월을 음미하면서 수많은 선각자들의 도전적이고 신념에 찬 용기가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말한다.

가로 20cm, 세로 28.5cm의 국한문 혼용체로 총 46쪽, 471행으로 구성된 해유가에는 긴박한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현실안주를 거부하고 서울행을 결단하고, 서울에서 일본을 거쳐서 하와이 노동자 모집에 응해서 배로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 영사관 서기로 일하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사를하면서 겪은 미국의 풍물과 습관, 복식과 정치제도 등을 고졸하게 적고 있다.

최미화기자 magohalmi@imaeil.com

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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