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글로벌 프리즘-미국의 차베스 길들이기

베네수엘라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주주의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나라다. 하지만 풍부한 원유 매장량에도 불구, 베네수엘라는 부정부패로 전체 2천400만 인구의 80%가 빈곤한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군부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축출과 임시 대통령의 사임, 차베스 전격 복귀 등 정국의 혼란을 겪으면서 미국의 막후 쿠데타 지원설이 흘러나와 중남미 국가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이같은 '음모론'의 배경에는 미국의 차베스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과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과거 수차례 중남미 국가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한 미국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차베스 대통령은 미국에 의해 미운 털이 박혀 있었다.

미국이 콜롬비아 정부군에 13억 달러를 원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베스는 콜롬비아 반군을 지원해왔고, 지난해 11월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테러 작전을 "테러에 테러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비난해 미국의 분노를 촉발하기도 했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고유가 체제를 주도하면서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는가 하면 이라크, 리비아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미국의 비위를 거슬러왔다.

미국이 차베스 축출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으로 볼때 이번 사태에서 완전 자유로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의혹을 사고 있는 부분을 돌이켜보면 차베스 퇴진 운동을 주도한 노동자총연맹의 카를로스 오르테가 위원장이 지난 2월 워싱턴을 방문해 국무부 관리들과 접촉했고, 쿠데타 세력들이 지난 2월말 수도 카라카스의 미국 대사관과 접촉했다는 점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5일 부시 행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 반(反)차베스 군장교들이 지난 2월말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자신들의 쿠데타 계획을 알렸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도 미 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부시 행정부 고위 관리가 최근 몇 달간 차베스 대통령을 축출한 연합세력 지도자들을 만났으며 차베스 축출에 동의했다고 잇따라 보도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지난 수개월 간 미국 관리들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정적들과 만난 것은 인정했으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

쿠데타 지원설의 진실이야 어떻든 '미국의 차베스 길들이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이번 차베스 권좌 복귀를 계기로 양국간 외교적 냉기류 상황이 지속될 것이 예상돼 향후 미국의 대 베네수엘라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미국 정부는 16일 베네수엘라 주재 비(非)필수 외교 요원들과 그 가족들이 베네수엘라의 치안상황과 스스로의 안전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해 철수하는 것을 허용했다.

미국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베네수엘라의 정국 혼란 및 치안상황 악화를 고려한 것으로 일단 판단되지만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차베스 정권에 대한 모종의 경고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것이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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