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졸탁동기의 개혁을...

연말 대선전의 가장 주요한 화두(話頭)는 아무래도 '정치개혁'이 될것만 같다. 잘 나가는 다른 나라들처럼 여야후보가 당당히 정책 대결을 해서 자웅을 겨룬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처럼 '인재풀'이 뻔한 터수인 만큼 정책 토론은 엄두도 못내고 누가 덜 부패했고 덜 무능한가를 다투는 '차악(次惡)경쟁'이 고작 아닐까 싶은 것이다.

요즘들어 나날이 터지는 것이 게이트요 부패 시리즈다. 한꺼번에 4, 5개씩 겹쳐 불거지는 통에 우리 같이 아둔한 머리로는 김모가 어느 게이트 관련자인지 최모는 또 무슨 먹자판 해당자인지 도표라도 그려놓아야 알아볼까 헷갈릴 지경이니 기가 막힌다.

이런 와중에 DJ아들 3형제마저 검은 소문이 끊이지 않는 형편이고 보면 이야 말로 문자 그대로 부패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에 아랑곳없이 정쟁에만 열중하니 이런 정치판이 세상에 또 있을까. 따지고 보면 우리 정치만큼 우여곡절이 심한 곳도 별로 없을 듯하다.

개발 연대에 홍안의 신입사원이던 사람이 퇴직 연령이 돼버린 지금에도 정치판의 3김(金)은 여전히 건재하다. 굴뚝산업이 퇴조하고 디지털시대가 밀어닥치고 세상이 상전벽해 되건 말건 지난 40년을 3김씨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지 여전히 합종연횡의 술수를 거듭하며 정치를 쥐락펴락하고 있으니 지금같은 나노시대에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3김씨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들이 변화를 외면하고 지역감정을 교묘히 부추겨서 자신의 정치생명을 늘려온 것도 물론 문제다. 그러나 더욱 문제되는 것은 이들이 자신의 독주를 위해 정치권을 황폐화시켰다는 사실 아닐까 한다. 수십년을 정치를 하면서 자신의 후계자 하나도 제대로 양성치 않은 그 독선에는 차라리 분노케 된다.

그 결과 여야 할 것 없이 반듯한 후보 하나 내놓지 못하고 지금처럼 언행에 문제 있는 사람 아니면 호화빌라 논쟁이나 유발하는 그런 사람을 내세워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해놓고는 말도 안되는 대세론이나 되뇌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 정치에 끼친 해독이야말로 비할 바 없이 크다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3김씨로 대표되는 기성 정치권이 개혁돼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지금 일고 있는 노풍(盧風)도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개혁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보아 마땅하다.야당에서야 '노풍'을 두고 별 것 아니라 애써 그 의미를 축소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언행이 일관되지 않은 노무현 후보 자체가 갖고 있는 득표력은 영남권에서 얼마 안될지 모른다.

그러나 기성의 정치 지도자에 대해 절망한 유권자들이 사회 변화를 바라는 욕구를 노무현 후보를 통해 실현하려고 나설 때는 '노풍'이 갖는 의미가 만만찮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불꽃 튀기는 토론 한번 없이 총재님, 부총재님식의 짜맞추기 경선으로 일관할 때 개혁을 바라는 많은 유권자들이 이회창 후보를 3김의 아류쯤으로 지레 짐작, 등을 돌리고 노풍을 신선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줄탁동기(日卒啄同期)란 옛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깰 때가 되면 안에서 껍질을 톡톡 쳐서 때가 됐음을 알리는 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마주 쪼아 껍질을 깨뜨려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게 도와주는 것을 '탁'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미 닭과 병아리가 같은 시간에 맞받아 쪼아야지 어느 한쪽이 다른 쪽보다 빠르거나 늦으면 병아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병아리 한마리가 세상에 태어나는 데도 백지장을 맞드는 식의 절묘한 타이밍의 조화가 필요한데 하물며 인간 대사(大事)를 이루기 위해서는 안팎이 어우러지는 '줄탁'의 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어찌보면 요즘 정치판에서 논의되는 개혁이야말로 줄탁의 묘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많은 국민들이 개혁에 대한 기대를 '노풍'에 실어 띄우며 정치권에 개혁을 요구하는 모습은 병아리가 보내는 '줄'의 신호에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지체없이 '탁'으로 맞받아 모처럼의 개혁의 불씨를 살려내고 민주화 시대를 활짝 열 일이 정치인의 몫으로 남았다.

그것은 우선 성실한 대선후보 경선에서부터 이뤄질 일이다. 어줍잖은 대세론으로 오만을 떨기보다 성실한 자세로 후보를 검증하면서 개혁의지를 보임으로써 국민의 개혁요구에 화답부터 할 일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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