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 인구 340만의 일본 제일의 국제무역항 요코하마(橫濱)에서 37세의 새로운 시장이 탄생했다는 소식은 일본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여당인 자민당과 야당인 사회민주당이 공동으로 추천한 노련한 정치가를 물리치고 당선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정당정치에 대한 일본 국민의 거부감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작년 5월에 자민당 소속이면서 자민당을 파괴하는 새로운 정치를 한다고 호언장담하면서 등장했던 고이즈미 수상에 대한 지지도는 1년도 못된 오늘 40퍼센트로 하락했고 자민당에 대한 지지도는 25퍼센트로 떨어졌다. 야당에 대한 지지도도 마찬가지다.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총체적인 불신이 요코하마시의 이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사실 작년에 고이즈미 수상이 등장하기 전야의 상황이란 자민당 아니 정치세력 전체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불신이 거의 절정에 달한 것이었다. 그 직전에 이루어진 몇 개의 현지사 선거에 있어서 보수 자민당 지지의 아성이라고 했던 지방에서조차 연이어 자민당이 패배하고 무소속 지사나 여성 지사가 탄생했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자민당 소수파에 속하고 기인이라고까지 하는, 그리고 자민당 파괴를 말하는 고이즈미를 내세워 집권당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이즈미 역시 자민당 정치의 소산이고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기껏해야 우경의 길로만 치달을 뿐 개혁이란 단순한 구두선( 口頭禪)으로 끝나는 것 같이 보이자 일본국민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한 셈이다.
중앙정치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어려우면 지방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 보자는 것이다. 고이즈미의 등장으로 일시 중단되었던 일본정치의 변화가 지금 다시금 지방에서 일어나려는 것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일본의 정치상황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6월 13일 지방선거나 12월의 대선은 어떠한 길을 밟을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치의 변화가 지방에서 일어나 서서히 중앙으로 이른다고 본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할까. 어쨌든 국민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세력은 민주주의 하에서 승리할 수 없겠지만 어쩌다가 대권을 쥐게 된다면 수습할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게 된다.
민주당 경선에 있어서는 이미 이인제씨가 물러남으로써 노무현씨가 여당후보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야당에서는 경선에 있어서 이회창씨가 단연 우세하니까 역시 그가 대선에 도전하게 된다는 것도 거의 확실시 된다.
이제 우리는 두 사람이 어떠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하는 데 관심을 모으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부정부패를 이렇게 혐오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부정부패 없는 사회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이 오늘까지 추한 대립을 일삼아 온 정당정치를 증오하다시피 하고 있다면 거기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 그리고 국민과의 대화 없이 독선적으로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제왕적인 대통령을 국민이 거부한다면 거기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답변을 경선 과정에서 단편적으로 들을 수 있었다고 하겠지만 거기에서 판단하는 한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에서 대권주자들이 거듭 주장해 온 것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는 인상을 받는다.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자신에 넘친 어쩌면 제왕적인 대통령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다짐만 내놓는 것 같았다.
그런 구태의연한 주장만 가지고 급격하게 변해가는 국민의식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내용 또는 구호와도 같은 제목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방법이며 그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우리 국민의 의지와 능력과 지혜를 어떻게 이끌어 내고 결집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해낼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지도력이야말로 엄청나게 변화해 가는 이 시대에 상응하는 지도력이 아닐까. 이미 확정되다시피한 대권주자들은 속히 이에 대한 청사진을 준비해서 제시해 주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한림대 일본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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