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명대도서관 고문헌실 장인진 실장

23일은 '세계 책의 날'. 인쇄술의 발달은 인류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킨 원동력이자 21세기 지식정보화 시대를 가능케한 인류문화의 밑거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책이 너무나 흔하지만 책의 가치와 소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계명대 도서관 고문헌실 장인진(54) 실장은 하루종일 고서(古書) 속에 묻혀 산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고문헌 자료들을 조사, 분석, 수집하고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 관리하는 일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장 실장은 오늘도 선조들이 남긴 책 속에서 국학 정신과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계명대 성서캠퍼스 동산도서관 7층 고문헌실.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 등 국가보물로 지정된 유일본 6책을 비롯 임진왜란 이전에 발간된 귀중본 700책 등 6만2,500여책의 방대한 문헌 자료들을 소장해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고문헌 자료실이다.

연간 2천여명에 달하는 계명대 방문 국내외 내빈들이 꼭 들러보는 곳이자 국학을 전공하는 연구자들에게 학문의 산실이기도 하다. 1978년부터 고문헌실에서 근무해온 장인진 실장은 서지학에 관한 전문지식과 탁월한 식견으로 이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다.

그가 고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학창시절 집안의 족보(族譜)가 계기. 족보에 대한 호기심은 이후 그를 고서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것도 책과 관련된 일이었다. 1974년 대구시립중앙도서관 사서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고문헌 특별전시회를 직접 주관하면서 우리 선조들의 책에 대한 애정을 확인한 그는 78년 계명대 동산도서관으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고문서를 연구, 조사하는 일에 매달렸다. 체계적인 공부도 병행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영남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한문학을 각각 전공하는 등 주경야독을 통해 전문지식을 쌓아갔다. 고문헌을 연구조사하는 일은 그에게 업이었다. 그에게 책과의 인연은 마치 핏줄처럼 끈끈하다.

도서관에서 소장할 고서를 구입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구입에 앞서 그는 자료의 복권(複卷)여부와 판본, 간년, 내용, 서지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선정한다. 때로 고서적상들이나 일반 소장자들과 책의 가치를 놓고 갑론을박, 주장이 엇갈리기도 하고 구입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숱한 고서들을 경험한 노련한 고서적상들도 장 실장의 눈을 속이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그는 이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조선조 경상감영소속 고등교육기관이었던 낙육재(樂育齋)에 대한 연구논문을 처음 발표, 학계에 알리는 등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도 10여편에 이른다. 특히 지난 95년 '경상도 700년사' 집필위원으로 참여해 조선시대 경상지역의 출판문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연구활동에도 열심이다.

그가 동산도서관에 근무하면서부터 지역대학뿐 아니라 전국 대학도서관들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동산도서관이 추진한 각종 기획프로그램들이 타 대학에 모범이 될 정도로 한발 앞서갔다.

족보자료전시회, 소장 귀중본 전시회 등을 개최해 일반인들에게 고문헌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서목록과 영인본 출판, 소장 고문헌자료 서지DB 구축 등을 통해 이용자들의 편리를 돕고 있다.

장 실장은 갈수록 고서 수요층이 두터워져 최근에는 질좋은 고서를 보기가 예전만큼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도 수준 높은 고문헌을 갖춰 연구자들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대학 도서관 본래의 기능에 소홀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요즘에는 계명대 개교 50주년이 되는 2004년을 목표로 동산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 원문DB 구축에도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동산도서관 주제정보팀장을 겸임하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늘 책을 가까이 하며 선조들의 정신을 다시 확인한다. 서구 물질문명이 팽배해 있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국학 정신을 진지하게 되짚어보도록 그에게 채찍질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우리 선조의 문화유산과 정신을 후손에게 계승하는 조그만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가슴 뿌듯하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분야에서 평생 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삶의 즐거움"이라고 말하는 장 실장의 표정이 어린애처럼 맑고 환하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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