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DJ아들과 김우중 아들

DJ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며 세 아들의 아버지이고 그리고 가톨릭 신자다.따라서 그에게는 세가지의 기본적인 의무가 따라 붙는다.

우선 공인으로서 올바른 국정수행의 의무가 있고 아버지로서는 자식들을 사회에 유익한 사람으로 바르게 키워야 할 의무, 그리고 하느님의 성서적 가르침을 따르는 신자로서의 의무가 그것이다.

우선 여기서는 실정이 꼬리를 무는 국정수행 부분은 제쳐두고 아버지와 신자로서의 의무 두가지만 생각해보자.최근 각종 게이트가 터져 나올 때 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세 아들들의 이름이 구설수에 끼어들고 있다.야당과 언론은 집요하게 의혹을 물고 늘어지고 부인의 해외여행 짐가방까지 캐고 드는 상황이다.

어느 아버지든 심사가 편할 리가 없다. 모르긴 하되 DJ로서는 마치 귀하고 사랑스런 죄없는 아들들이 바람 거센 정치판에 끌려나와 성질 나쁜 '이리떼'들에 둘러싸여 쫓기고 있는 듯한 불편한 심기에다가 어쩌면 '감히 내 아들을…'이라는 노기까지 뒤섞여 밤잠을 설칠지도 모를 일이다. 헌데 이상한 것은 그런 분란중에도 도무지 아들의 의혹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다는 점이다.

평범한 집안에서 아들 셋에게 온 동네 떼손가락질이 쏠려온다면 벌써 아버지가 팔을 걷고 나섰을 법한데 어쩐 일인지 그는 온 나라뿐 아니라 외국까지 시끌벅적 소란스러운데도 묵묵부답, 돌부처다.

의혹시비에 대해 묵묵부답하는 경우는 세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먼저 의혹이 사실이어서 면목이 없는 경우의 유구무언, 또 하나는 사실이 아니므로 너희들이나 실컷 떠들어라며 콧방귀 뀌는 오불관언, 그리고 사실이지만 끝까지 감춰줄 자신이 있을 때다.DJ의 묵묵부답이 세가지 중 어느 경우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도 아들들에겐 노벨상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자랑스런 아버지상(像)을 선보여주고 싶은 보통 아버지일 거라는 점. 그리고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귀엽다듯이 그 역시 남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내아들을 믿고 보호하고 싶은 평범한 부정(父情)에 매여 있을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 세아들에 얽혀있는 정치적 도덕적 정황은 마냥 자식의 상처를 감싸매고 잘못을 눈감아 주는 감성에만 끌려 다닐 형편이 아니다. 온갖 의혹들에 대한 비난이 공연한 정치적 트집이 아닐 경우 더 이상의 묵묵부답은 정권의 신뢰회복.대통령 일가의 명예 어느쪽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DJ의 아버지로서의 의무는 애틋한 자식사랑이 아니라 사실여부 어느쪽이든 의혹의 실체규명을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이는 일이다. 검찰과 언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식도 아버지 앞에서는 진실을 말하게 돼 있고 제대로 된 집안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비정할지 모르지만 세 아들은 이미 세계의 이목을 끌고있는 공인이기에 그 아버지의 의무도 평범한 아버지의 의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의혹캐기가 주저되고 내자식만 안쓰럽다는 마음이 앞선다면 최근 당신께서 이끄는 정부의 비정한 처사로 피눈물을 흘린다는 어느 몰락한 재벌의슬픈 자식 사랑을 한번쯤 생각해보라.

김우중씨. 그는 지금 DJ 당신을 원망하며 죽은 자식생각으로 울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이 백만불짜리 저택에서 월 7천만원의 생활비를 쓰며 살고 있다는 이 시간, 그의 죽은 맏아들은 2평도 안되는 무덤 자리 조차 빚에 빼앗기고 다시 화장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김씨가 대우그룹을 청산할 때 모든 주식과 경영권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DJ정부가 장남의 묘소가 있는 480평 규모의 자그마한 농장만은 보호해주기로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고 경매에 넘어가게 함으로써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했다.

결국 아들 무덤을 빚 때문에 빼앗긴 그는 10년 넘게 가슴에 묻고 지낸 맏아들의 주검을 다시 꺼내 화장하는 뼈저린 슬픔을 맛봐야 했다. 보도대로라면 권력을 지닌 아버지의 아들은 호화생활의 의혹과 시비가 들끓어도 저택이 보호되고 돈을 잃은 아버지의 아들은 죽어서도 한뼘 무덤조차 지켜지지 못하는 엇갈린 아버지의 사랑을 보게 된다.

이제 DJ는 권력과 돈이 없어 죽은 자식을 다시 화장시킨 김우중씨의 가슴 아픈 아들사랑을 생각해보면서 결단을 내려야할 때다. 남의 자식 슬픔을 생각해보고 그래도 칼을 뺄 용기가 나지않는다면 진정한 가톨릭 신자로서 성서를 펴보시라.

한 국가의 지도자이며 세 아들의 아버지 그리고 신자로서 내려야 할 결단과 의무에 대한 해답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자식을 귀여워만 하는 사람은 자식의 상처를 싸매주기만 하다 말 것이다. 자식에게 너무 자유를 주지 말고 그의 잘못을 눈감아주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그의 추태로 네가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구약성서 집회서 30:10에서).

김정길 본사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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