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죽도록 외로우면 기차를 타라

'삶이 역이라면 좋겠다/ 사방팔방으로 가도 좋으니까/ 마음 헛짚어/ 역마살이 끼어/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어도/ 역은 항상 역으로 거기 그 자리/ … / 상처받은 가난한 마음의 행로여/ 내 마음의 행군이여/ 이 저녁 역으로 가는 길에/ 발자국을 남기고/ 역마살을 남기고'.

1985년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곡의 노랫말로 유명세를 탔던 시 '바다에 누워'의 시인 박해수(55)씨가 역(驛) 순례에 나섰다. 전국에 흩어진 760여개의 기차역이 지닌 고유의 의미와 서정을 시로 담아내고 있는 것.

그동안 없어진 간이역도 많지만 그런 역들은 어린시절의 기억이나 군 복무 시절의 추억을 되살렸다. 현존하는 역들은 되도록 기차를 타고 현장 답사를 다닌다. 현재 완성된 역시(驛詩)는 월간 시사랑에 13회째 연재한 것을 포함해 80수 정도.

박 시인은 우선 발표된 역순례 시를 모아 가칭 '죽도록 그리우면(외로우면) 기차를 타라'는 시집으로 오는 6~7월경 첫권을 출간할 예정이다. 그리고 매년 1권씩 10권의 시리즈 발간을 목표로 세웠다. 이같은 시도는 문단에서도 처음있는 일이다. 출판사도 일부러 대구의 북랜드를 택했고, 독자들을 생각해 문고판으로 간행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삶의 불확실성 속에 끊임없이 표류하던 시적 자아가 회색빛 도시문명을 탈출해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충동질 했습니다. 가파른 삶속에 잃어버린 가치를 찾아 나선 것이지요". 숱한 역마다 시인의 가슴에 투영된 이미지도 천차만별이다. 잔잔한 일상의 서정도 있고 깊은 삶의 수렁에서 고뇌의 목소리도 있다.

하양역은 시인에게 어머니의 야윈 젖가슴이었으며 목포역은 어머니의 애틋한 그리움처럼 다가왔다. 동짓밤이 깊어가는 조치원역에서 시인은 한마리 새가 되었는데 봄밤에 찾은 왜관역에서는 목련꽃 지는 슬픔에 젖었다.

늙은 소나무 옛 등걸 속에 전쟁마저 숨었던 장마루촌 장파리역엔 시린 사랑의 아랫목 군불이 타고 있었다. 1년째 계속되고 있는 시인의 역순례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삶의 고통과 죽음의 언덕을 넘어선 무위(無爲)의 경지. 20년전의 대표작 '바다에 누워'에서 노래했던 생명의 원상인 자연회귀와 연속선상에 있다.

그래서 시인이 기차를 타고 떠날 시적 종착역은 바로 '하늘 역'이다. '촛불을 들고/ 하늘 역을 어리둥절/ 찾아 갔습니다/ …/ 만남과 이별도 없고/ 영원히 사는 것 뿐이라고/ 하늘 역에는 고통스런 시를 쓰지 않아도/ 좋은 시들이 많은 것이라고/ …'.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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