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리를 짓밟은 '정치적 입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마침내 한국은행에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7일 강영주 금융통화운영위원이 증권거래소 이사장으로 내정된 단순한 인사발령에서부터 비롯됐지만 그동안 쌓여온 한국은행과 정부, 금통위의 불편한 관계를 드러낸 셈이다.
문제의 핵심은 임기 4년이 보장된 금통위원을 중도에 교체시켰다는 것. 통화신용정책을 수립하고 한국은행의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정책결정기구인 금통위의 위상 추락에 대한 반발이다. 한국은행 노조는 즉각 강 위원 교체를 철회하고 금통위원 추천제도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이 동조하고 나섰고, 지난 23일에는 한은 전직원이 가세했다. 금통위의 독립성 문제가 본격 거론된 것이다.
어떤 이유든 금통위원을 정부 인사정책의 방편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선진 자본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굳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한국은행법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금통위의 독립성은 필수조건이다. 정경(政經)분리는 민주주의의 기본이 아닌가. 특히 경제 규모가 비대해지고 경제 시스템이 복잡해짐에 따라 오히려 정치가 경제논리를 따라와야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세계 13대 경제대국인 한국에 아직까지 이런 구태(舊態)가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이 여전히 경제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과거 개발 연대(年代)의 악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장 위주 정책의 그늘에 가려 당시에는 금융통화위원이 아니라 정부의 거수기 역할을 한 '금융통과위원'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총통화(M₃)가 1천조원을 넘는 거대 경제로 발돋움했다. 그런데도 국부(國富)의 흐름을 조절하는 금융통화위원을 인사 숨통을 트기위해 쉬어가는 자리로 착각한 정부의 태도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관치금융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