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정치가 실종된 사회

"노풍은 왜 붑니까?" "노(No)니까 바람이 아니잖아요?"

"그럼 창이 되겠네요?"

"어떤 방패냐가 문제지요".

한 동료교수가 건네 온 질문에 이렇게 썰렁한 대답을 하자, 그분은 "정치학하는 사람한테 한마디 들어보려고 했더니"하며 어이없어 했다. 필자의 현 정치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여과 없이 드러낸 것이 미안해서 "우리나라에 정치가 있어야 정치학이론으로 설명을 드리지요"라고 해명하니 약간은 감을 잡는 듯 했다.

우리가 눈만 뜨면 또 귀만 열면 접하는 것이 정치관련이야기인데 정치가 없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억측인가. 하지만 정치는 정치꾼(politician)들이 자신들의 권력획득만을 위하여 정치판에서 설치는 망동이 아니며, 도덕성을 갖춘 정치가(statesmen)들이 사회구성원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여 정치무대에서 행하는 선의의 경쟁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현재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결코 정치가 아닌 것이다.

우리국민은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바른 정치를 열망해 보았고, 시민단체들의 활동영역이 확대되면서 시민사회가 도래할 것처럼 기대에 부풀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IMF와 대통령아들 김현철게이트라는 엄청난 배신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새 정부에 기대를 걸어보는 천진함을 보였으나, 나쁜 기억들이 뇌리에서 잊혀지기도 전에 빌라사건·3弘비리의혹이라는 정치지도자(?) 아들들이 연루된 비리현상을 다시 봐야하는 불행을 겪고 있다.

또한 우리는 게이트와 리스트 관련 내용을 식상하도록 보면서 한국경제 운행메커니즘의 변칙성에 분개하고 있다. 그 뿐이랴. 우리는 이러한 정치실종으로 도외시된 민생문제에 허우적거리면서 젊은이들의 자살 소식을 무참히도 연일 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실종의 원인은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우리나라 정당제도의 문제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학자 토크빌(Tocqueville)은 국가와 시민사회사이에 정치사회라는 매개영역을 설정하고 있는데, 이 영역은 국가로부터 자율성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상황 하에서 제도적 틀을 통하여 사회의 직접적인 갈등과 대립을 조정 중재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핵심적인 제도가 정당으로, 정당은 사회구성원들이 표출하는 다양한 이익을 집약하여 정치적 이슈를 고안하고 정책화함으로써 사회통합에 기여해야 한다. 즉 정치사회는 정당의 운영메커니즘과 정치행위자들의 행태에 의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에 여당과 야당에서 대통령후보 경선제가 도입되자 건전한 정당민주주의가 정립된다는 등의 찬사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아직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지나친 분홍빛 환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수많은 부정적인 현상들에 부딪치고 있다.

정책대결 없는 상호비방과 구태의연한 색깔논쟁으로 얼룩진 여당 경선실상과 지구당위원장 줄세우기식 불공정 경선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의 경선과정은 우리나라 정당정치가 초보 수준임을 말해 준다.

게다가 호남당·영남당도 모자라서 경선에 실패한 사람의 애매모호한 발언과 행동으로 '충청당탄생 분위기 모락모락'이라는 기사 타이틀을 낳게 하고 있다. 어느 민주주의 국가에 지역이 당조직의 기준이 될까? 이러한 일인 지배체제라는 비민주적 정당 운영메커니즘과 정치꾼들의 일련의 부도덕적이고 신조없는 정치행태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정치사회는 정치실종이라는 비극을 겪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정당제도가 개선 내지는 변혁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정치 미래를 결코 밝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정당들은 생존의 수단으로 공유하고 있던 지역연고와 인맥을 기반으로 하는 현 구조에서 탈피하여 전국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더 나아가 정권획득만을 지양하는 포괄정당의 성격을 극복하여 정책정당의 면모를 갖추고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경쟁구도를 이루어야 한다.

(조수성·계명대 교수 중국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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