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의 성씨(姓氏)는 가족의 정체성을 상징하며, 전통적인 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정서적인 공동체를 형성해 온 하나의 '보편화된 질서'로 여겨져 왔다. 가정이라는 조직을 존속시키는 제도적인 틀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민법 제781조 1항에는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아버지 가계에 입적한다"로 돼 있고, 778조, 826조 등에도 호주제 관련 규정들이 명시돼 있다. 호주제와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우리 민족의 근본이며 미덕으로 통해 온 셈이다.
▲그러나 '여성계에 의한 제2의 창씨개명 운동'으로 불리는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지난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 '부계(父系)의 성은 신성하다'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바람이 날이 갈수록 드세지고 있다. 성 차별의 '골리앗'을 향해 '부계 혈통 사회를 무너뜨리겠다'는 슬로건이 펄럭이고, 뜻을 같이 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한다.
▲최근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호주제 등 봉건적 가부장제 타파를 취지로 일부 여성단체들이 벌이기 시작했던 이 운동은 최근 시민단체와 남성들을 포함한 일반 시민에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이 운동에 동참하면서 자신의 성에 어머니의 성을 새로 추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가 하면, 자녀의 이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붙여 호적에 올리는 사례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성과 이름 대신 '별칭 쓰기 운동'도 벌어져 '공기' '맨발' '허브' 등의 별칭을 명함에 박아 쓰는 바람도 만만치 않다. 특히 여대생들 사이에는 호주제 폐지를 위한 문화운동 차원에서 이 같은 새 물결이 일고 있다 한다. 하지만 일부 유림들은 '전통을 붕괴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여성 운동을 빌미로 우리 민족의 근본을 흔들 게 아니라 호주제의 문제점을 단계적으로 고쳐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서구 국가들 중엔 이미 1960년대부터 여성이 결혼 후 남편 성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성을 쓸 수 있도록 법을 바꾸거나, 스웨덴·덴마크처럼 일정 기간 안에 신고하지 않을 경우 무조건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돼 있는 나라들도 있다. 같은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자녀는 아버지나 어머니 중 어느 쪽의 성을 붙일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가부장제의 극복은 좋지만, 유림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자녀의 정체성보다 부모의 욕심을 우선시하는' 풍조는 아닐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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