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달리는 고속버스 차창으로

곁에 함께 달리는 화물차

뒤칸에 실린 돼지들을 본다

서울 가는 길이 도축장 가는 길일텐데

달리면서도 기를 쓰고 흘레하려는 놈을 본다

화물차는 이내 뒤처지고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저 사랑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

아름답다면

마지막이라서 아름다울 것인가

문득 유태인들을 무수히 학살한

어느 독일 여자 수용소장이

종전이 된 후 사형을 며칠 앞두고

자신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생리를 보며

생의 엄연함을 몸서리치게 느꼈다는 수기가 떠올랐다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끊임없이 피 흘리는 꽃일 거라고 생각했다.

-윤재철 '생은 아름다울지라도'

그야말로 '생의 엄연함'이 느껴지는 시이다. 도축장가는 길에 흘레붙는 돼지와 죽음 직전에도생리를 하는 여자 수용소장의 모습에서 처절한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시인의 안목이 비범하다.

특히 마지막 두 행, 생은 아름답지만 끊임없이 피흘리는 꽃이라는 구절 앞에서는 생의 장엄한 비극적 위엄마저 느껴진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피 흘리지 않는 생이라면 그건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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