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소년소녀가장

5월은 가정의 달.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기념일이 많다. 청소년의 달이라는 이미지와 어울리게 5월엔 신록이 더욱 짙어만 간다. 하지만 소년소녀가장들에게는 가정의 달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가정의 안온함을 느껴야할 나이에 일찍부터 부모 대신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진 탓이다. 우리 주변의 적잖은 소년소녀가장의 생활과 이들에 대한 지원대책 등을 살폈다.

이준진(15·대구시 서구 평리동)군은 소년소녀가장이 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마저 재혼하면서 그의 곁을 떠났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준진이 이렇게 세 식구가 지은지 20년이 훨씬 넘은 13평짜리 낡은 서민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생활마저 어려운 형편. 할아버지 이태복(77)씨는 다리를 다쳐 벌써 이태째 바깥 출입을 못하고 있고, 얼마전까지만 해도 허드렛일로 생계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던 할머니 박귀남(70)씨도 이제 일을 그만두었다. 고령인데다 주변의 눈치 때문에 더 이상 일할 형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준진이 가족은 연탄보일러 대신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대신한다. 다른 집들은 기름보일러로 개수했지만 준진이네는 비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연탄도 흔치 않고 게다가 5층이라 배달마저 꺼려 아예 전기장판으로 온 식구가 몸을 녹인다.

고교진학을 앞둔 준진이는 8시가 되기 전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등교길에 오른다. 자칫 엇나기 쉬운 사춘기인데다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주변에서는 걱정하지만 준진이는 성실하게 제 몫을 잘해내고 있다.

학교 성적도 꽤 우수한 편이다. 수학경시대회에도 여러차례 입상했고, 지난해 대구시 교육청의 추천으로 4박5일동안 일본 견학여행도 다녀왔다.

급우들과도 곧 잘 어울리지만 한번도 집으로 데려온 적은 없다. 이런 그에게 담임선생님도 많은 배려를 해주고 있다. 오후 4시 방과후엔 학원에서 모자라는 영어, 수학공부에 매달린다. 할머니가 얼마되지 않는 생활비를 쪼개 준진이의 학원비를 충당하고 있다.

인근 교회의 대학생들이 매월 찾아와 집안 일을 거들어 주고, 은행직원들도 십시일반 적은 금액이지만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주변의 이런 관심과 도움 때문에 생활에 크게 불편함이 없다고 말하는 할머니 박씨는 그래도 준진이가 가장 큰 걱정이다.

집안에서는 엄마·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지만 준진이도 내색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준진이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비록 외롭지만 조부모님의 보살핌 속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준진이는 다른 소년소녀가장들에 비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대구시내 소년소녀가정세대는 모두 180세대 260명. 달서구(108명)와 수성구(54명), 달성군(51명) 순으로 많다. 아동복지 차원에서 대구시가 소년소녀가장세대(가정위탁보호아동 포함) 지원을 위해 책정한 예산은 국비와 시비를 합해 연간 4억8천만원 정도.

시는 이들에게 생계비와 주거비, 교육비, 의료비 등 30만원에다 급식비, 특별지원비 등 10만5천원을 보태 매달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전문가와의 정기적인 상담 및 결연을 통한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는 일에도 비중을 두고 있다.

한국복지재단 대구지부 등 결연기관과 연대해 소년소녀가장세대와 시설보호아동을 지역 사회인사, 단체와 결연시켜 물질적, 정신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것도 좋은 사례다.

경북도의 경우 723세대, 1천109명(2000년 기준)의 소년소녀가장세대를 보호하고 있다. 도내 전체 국민기초생활수급 대상자 5만7천800여 가구의 1.5%에 가까운 수준이다.

연간 지원액은 약 8억6천500만원. 90%이상의 소년소녀가장이 후원자 결연으로 민간차원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민간차원의 소년소녀가장돕기 후원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한국복지재단(대구지부 964-3334, 대구시 여성정책과 429-2512),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 시민대연합, 참사랑청소년운동본부 등이 조직적인 후원체계를 모색하고 있고, 소년소녀가장세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동호회 등 민간 모임들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또 11월 1일을 소년소녀가장의 날로 지정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반면 IMF사태 이후 생활보호대상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상대적으로 소년소녀가장 세대에 대한 관심이 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 때문에 이들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사회복지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청소년 전문가들은 "소년소녀가장 세대에 대한 일회적 행사성 지원보다는 지역사회가 이들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고, 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옆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주는 사회분위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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