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가짜 같은 진짜?'

진짜보다 좋은 가짜가 있다면 '진짜 가짜'라고 해야 할까. 우리는 지금 그런 '가짜 천국'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 이태원 골목을 예로 들면서 국내의 인기는 물론 수출까지 하고 있어 '가짜를 만드는 재주는 우리가 세계 1위'라고 했다.

안방에까지 사이버 세계가 범람, 그 혼돈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야 할 지경이다. 이 같이 가짜와 가상의 홍수 속에서 살다보니 이젠 가짜를 진짜로 보고 있는지, 진짜를 가짜로 보고 있는지, 장주(莊周)의 나비처럼 아리송하기만 하다.

▲정교한 가짜는 진짜와 구별이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진짜 행세를 한다. 가짜 미술품이 진짜로 둔갑해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창의력과 독창성을 생명으로 하는 예술가들이 남의 작품을 베끼는 사례는 공개된 비밀에 속할 정도다. 고통과 고뇌와 자기 희생에서 빚어지지도 않은 가짜 미술품들이 예술가들의 그런 정신을 좀먹고 있다.

▲한국화랑협회(회장 임경식)가 2일 공개한 '미술품 감정 데이터 베이스'는 1만여점의 자료를 통해 그 실상을 말해 준다. 이 데이터 베이스는 가짜 그림의 수는 화가의 인기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을 뿐 아니라 뇌물로 상납된 그림들은 가짜가 대부분이라니 기가 찬다.감정 의뢰는 김기창(367점) 이중섭(189점) 김환기(153점) 박수근(101점) 순이며, 가짜는 이중섭(143점) 김기창(113점) 박수근(37점) 김환기(36점) 순으로 이중섭의 경우 10점 중 8점 정도가 가짜란다.

▲우리 사회는 가짜가 판을 치고, 오히려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사이비 예술가, 사이비 학자, 사이비 정치인이 적지 않다. 그들의 공통점은 말을 잘하고, 유행에 민감해 대중에 영합하며, 시류에 편승해 인기를 누리면서 개인적인 명예를 챙기는 점 등이다. 특히 요즘 같은 대중사회에서는 대중 매체를 통해 이미지를 조작하고, 그럴 듯한 말과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기도 쉬운 면이없지 않다.

▲가짜의 범람은 생활 속에서도 가짜 불감증을 불러일으켜 가짜인 줄 알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심지어 싼값에 얻을 수 있다면 가짜라도 좋다는 풍조까지 만연시키고 있다. 이런 가짜 문화, 가짜 상품, 가짜 지도층까지 판치는 사회를 정직한 진짜가 아니면 발 붙이지못하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 정직한 사회에 대한 희망의 싹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가짜를 가려내고 추방하는 일에 더욱적극적이고 지속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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