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 애기'라는 말이 있다. 따라서 어린아이를 그다지 탓할 수 없듯이 노인에게는 어느 정도 관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3월 초에 부푼 가슴으로 대학을 찾은 신입생들도 이제는 대학생활이 어떠한 것인가를 대략 알았을 것이고 그런 때가 되면 마음도 해이해지기 쉬워서 일본 대학에서는 5월병에 걸린다고 말한다. 이런 시기에 노인이라는 특권으로 우리나라 대학이 앞으로 이랬으면 어떨까 하는 일종의 몽상도(夢想圖)를 펼쳐보고자 한다.
먼저 일류대학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입시란 사실은 우습기 짝이 없다. 한 점이 모자란다고 해서 그 사람은 일생 동안 일류대학 출신이라는 특권에서 제외된다. 이 나라 이 사회 또한 우습기 짝이 없다고 해야한다.
운 좋게 한 점을 더 받았다고 해서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과 일생 동안 다르게 사회가 대해 준다면 우습지 않은가. 입시 성적이 대학 때 성적이나 사회에 나와서의 활동이나 업적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러한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벌이라는 우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서울대학이니 일류대학이니 해놓고 거기에는 이 나라 이 사회가 예산도 기회도 퍼부어 주면서 다른 대학은 홀대한다. 국립이면 학생들이 내야하는 학비에 있어서도 대단한 차이다. 입시라는 우연성을 바탕으로 해서 그런 차별과 특권화가 이루어지는데 그래도 된다는 것인가. 그들의 가족은 국민으로서 모두 다 같이 세금을 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국가예산이 그렇게 집중되는 곳이라면 적어도 학부는 폐지하고 대학원 대학으로 해서 모든 대학에서 학문을 지향하는 인재들이 모여드는, 예를 들면 서울대학교가 아니라 민족 전체를 위한 대학, 아니 대학원으로 변모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 떠들어대는 두뇌한국의 앞날을 위해서도 말이다.
아마도 이런 시도는 각 도에 있는 지방 국립대학에서도 행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백과전서 식의 나열된 학과가 아니라 특색을 각기 달리하는, 우수한 두뇌집단이 전국 중요 지역에 우뚝 솟아 있었으면 한다. 그래야 지방대학과 서울의 대학과의 차별도 사라진다.
개혁의 방향이란 입시와 같은 우연에 의한 국민의 차별을 줄이고 기회를 언제나 개방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그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학들이 지금과 같이 폐쇄적이고 계열화를 지속한다면 젊은이들의 사기는 여지없이 떨어지게 된다.
개혁은 대학 스스로가 추진해가야 하고 정치가 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오늘과 같이 교직원의 이해관계가 대학이나 학문의 자유라고 착각하다시피 하는 집단 이기주의라면 이것이 가능할 리 없다. 대학의 이념 그리고 대학 안에 꽃필 수 있는, 이제는 모두가 낡은 것이라고 버리고 싶어하는 지도 모르는 이른바 사제지간의'사랑' 이런 것이 몹시 그리워진다.
요즘 하나 아렌트와 그의 스승 칼 야스퍼스의 방대한 양의 왕복서간을 읽으면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한층 더 대학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1947년 3월 독일에 남아 있는, 나치의 대두와 전쟁으로 오래 만나지 못한 철학자 야스퍼스 선생에게 정치철학도로서 아렌트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쓴 작은 책을 기증하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일생 동안 단 한번만 야심을 품은 적이 있다. 그것은 20수년 전 당신의 격려를 받고 어느날 당신을 실망시키는 내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고 다짐한 야심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많은 파란을 겪고 나서 여기에 작은 책이나마 당신에게 바치게 되었다니 그것은 정말로 '기적'처럼 생각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 후에도 야스퍼스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20년 넘게 아름다운 지적 교류를 계속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사상은 더욱 무르익어 갔던 것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봐도 물질만이 가치인 것처럼 현금주의가 만연해 있는 오늘, 나는 그러니까 대학은 더욱 이런 지적이며 인간적인 만남을 담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꿈속에서처럼 아련히 그려보는 것이다.
(한림대 일본어 연구소장)
댓글 많은 뉴스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탄핵안 줄기각'에 민주 "예상 못했다…인용 가능성 높게 봐"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