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은 한때 '공포영화'였다?
몇십년전 몸을 붓으로 삼는 '보디 아트'가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가끔 영화에서 본 것처럼 나체에 물감을 바르는 장면은 점잖은 편에 속하고, 자신의 몸을 갖가지 과격한 표현수단으로 내던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자신의 몸을 자해하고 자신의 정액을 바르고…". 한마디로 별별 짓거리가 다 행해졌다.작가 나름의 철학과 주제의식이 있었겠지만, 상당수는 주목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듯 했다.
자신의 배설물을 90개의 깡통에 담아 작품으로 제작, 세상의 주목을 받는데 성공한 이탈리아 작가도 있고, '화면에 생생한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높은 곳에서 미리 깔아놓은 캔버스 아래로 뛰어내린 일본 작가도 있었다.
또 프랑스의 한 여성작가는 온몸의털을 깎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거나 많은 음식을 먹다 토해내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미술계의 악마'라는 미국작가 크리스 버든의 미술행위는 공포영화에 더 가깝다. 그는 바닥에 깨진 유리조각을 깔아놓고, 뒹굴고 TV생방송에 난입해 진행자를 인질로 잡거나 자신의 팔에 총을 쏴 살점이 찢어지는 모습을 작품으로 버젓이 내놓았다.
그는 대학시절 자그마한 궤짝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 5일동안 물만 마시고 지내는 것으로 졸업작품을 대신할 정도로 일찌감치 대성(?)할 조짐을 보였다.
사실 보디아트의 선구자는 1917년 화장실에서 떼어온 '변기'를 작품으로 내놓아 현대미술의 개념을 바꾼 마르셀 뒤샹(1887~1968)이 아닐까.그는 자신의 체모와 정액을 재료로 쓴 작품을 유작으로 남겨놓아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당시에는 '행위예술'이란 이름으로 온갖 난잡하고 폭력적인 수단이 정당화된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한순간 미술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해프닝이나 가십거리로 끝났다.
국내에도 나체로 뛰어다니거나 온몸에 물감을 바르는 시도가 몇차례 있었다. 우리 정서, 분위기와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부분적으로 시도됐을 뿐, 뚜렷하게 발흥된 적이 없다.
다만 60년대 말부터 암울한 사회상황과 결부돼 일탈의 욕구나 구조를 보여주는 정통의 행위예술(퍼포먼스)이 행해졌고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작가들은 아직도 미술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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