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제3의 황제들

임기를 반년이나 남겨둔 김대중 대통령이 느닷없이 탈당을 선언했다.이유는 '부정 부패 척결과 국정전념'이란다.

몇달전 당 총재직을 내던졌을때도 사퇴 이유는 '정치는 노(No), 경제 전념'이었다다시 말해 오직 나라를 위한 탈당이요 총재직 사퇴라는 얘기였다.

국정전념? 좋다. 경제전념 필요하다. 그런데 아들들과 최측근 가신이 부패의혹의 한가운데 서 있는 상황에서 새삼 부정부패 척결은 또 뭔가?

걸맞지 않은 대목은 또 있다. 집권 여당의 대통령이라면 아무리 민심을 못잡고 있는 정당이라도 당(黨)이라는 공조직의 힘을 빌리고 공조하는 쪽이 국정수행에 더 보탬이 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당 총재직을 버려야만 경제에 전념할 수 있고 탈당을 해야만 국정이 더 잘 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는 민주 정당정치의 기본틀을 벗어난 논리다.

더구나 DJ의 경우 과거 어느 정권의 집권자보다도 레임덕 현상이 훨씬 더 일찍 그리고 심하게 나타난 케이스다.

게이트들이 꼬리를 물고 터져나오는 가운데 최측근 가신의 부정이 속속 불거지고 가족들의 비리의혹이 번지고 있는 탓이다.

거기다 세무 조사를 하고도 제압하지 못한 언론의 집중 포화가 멈출줄 모르는 상황에서 조기탈당에 의한 나홀로 정치는 레임덕을 가속화 시킬 게 뻔하다.

그 탈당마저도 자의적 결단이라기보다는 노풍이 계속 불게끔 스스로 당을 떠나주면 좋겠다는 무언의 눈치에 떠밀려난 인상이 짙은 탈당인 마당에서야 레임덕의 가속은 더 말할 것 없다.

어떤 이유에서든 지도자의 레임덕이 오래가고 심화될수록 국가와 국민을 위해 유익할 것은 없다. 그런 레임덕보다 더 위험스런 것은 지도자의 통치력 약화를 틈타 제도권 밖의 간접 통치세력으로 등장하는 '제3의 황제들'의 그림자다.

속칭 노사모의 홈페이지에 실린 네티즌의 표현대로 '후보되고서 하는 짓이 고작 YS에게 시계 보이며 애교 떨고 아양 떠는 짓이냐'고 비판당한 노무현 후보의 YS방문에서도 우리는 '제3의 황제'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제발 조용히 전직대통령답게 체통이나 지키며 입다물고 계셨으면 좋겠다 싶은 분'이 IMF이후에도 현직 대통령보다 더 입심세고 큰소리 치며 설치니까 마치 수렴뒤의 황제로 비치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도 대선전략에 거치적거리는 존재라 여겨지면 탈당을 눈치줄 정도의 막강한 여당 대통령 후보조차 자칭 '국민의 뜻을 저버린 변절자'라고한 사람 앞에서 황제마냥 머리를 조아린다면 정치개혁의 시계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듯한 황제들의 세상으로 되돌아가는 꼴이다11명의 경찰관을 불에 타 숨지게 하고 사법부의 유죄판결을 받은 범법자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심의결정한 사람들도 통상적 통치권을 뛰어넘는 절대권을 쥔 황제같은 존재로 비쳐졌다.

그들의 결정에는 재심 절차조차 없다. 그야말로 절대적 심판자처럼 역사를 독단하고 법정의와 안보와 공권력의 가치관을 결정하는 황제같은 존재가 됐다. 누가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했을까. 그들이야말로 마치 그림자만 보이는 제3의 황제들이다.

명색 국정원의 고위간부가 제도권 밖의 비선을 통해 여당 실세에게 국정정보를 흘린 것 또한 이 정권주변에 제3의 황제란 존재가 엄연히 실존했음을 확신케 한 사례다.

공직사회에 정치적 황제가 입김을 넣고 있으니까 부패고리가 생길 수밖에 없고 통치조직의 권위와 공권력은 약해지기만 한다.

교육계는 또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가. 그리고 군부는, 재계와 노동계는? 금강산댐에 물이 새도 위쪽 눈치보느라 쉬쉬하고 대북발언이 귀에 거슬린다고 남한 장관의 목을 떼라 붙이라 끼어드는 북한도 그런 의미에서는 또하나의 황제를 닮았다.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할 위험한 현상이요, 무서운 존재들이 아닐 수없다.제3의 황제들은 법통을 지닌 통치권자가 권위를 잃거나 권력의 부당한 분산을 조장, 묵인할 때 생겨난다.

제도권 밖의 극단적인 이념집단 또는 부패한 세력의 황제들이 설치는 것은 곧 이 정권의 통치권이 바로 서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나라의 안전과 기강을 세우고 국론의 안정을 위해서는 일단 남은 임기동안 DJ의 통치권 신뢰회복을 기대 해보는 길밖에 없다. 또한 보수든 진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불순한 제3의 황제들의 발호만은 함께 경계해야 하고 막아야 할 것이다.

김정길(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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