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모습 한 모습 화현하기 위한 한 획 한 획의 가녀린 선이 극락을 이루고 희열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구원의 세계이기도하고 아름다움의 극치이기도 하다. 붓을 든 스님도 이미 한 경계를 넘어서 있다.
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86년 동안 불화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까. 종교적인 절대미의 세계를 이루어낸 인간적인 비결이 무엇입니까". 무거운 질문에 대한 스님의 화답은 너무도 단순하다. "하나의 단청이 완성되면 그 다음을 생각하고 또 다음을 생각했어요. 더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물음 자체가부질없는 것이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인 것을.
우리나라 단청(丹靑)의 최고 거장인 만봉(萬奉.93.인간문화재 48호 단청장)스님이 8일부터 21일까지 대구시민회관 대전시실에서불화 초대전을 가진다. 100여점의 단청과 불화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는 대구 불교회관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희사(喜捨)여서 더욱 뜻깊다.
스님은 운명처럼 불가에 들어와 운명처럼 단청을 접하게 됐다. 구한말 연안 이씨 가문의 5대 독자로 태어났지만 단명(短命)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불가와 인연을 맺고 김예운 화상을 만나면서 불화에 입문해 금어(金魚) 자격을 얻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 오면서 스님은 오로지 단청만을 생각하고 단청만을 그렸다. 그 비범한 재주에도 산수화나 인물화 한점 남긴 게 없다. 단청만이 삶의 절대가치요 자신의 존재 이유였다.
그것은 '필연'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그렇게 초지일관해온 스님의 삶과 예술은 찰나적인 만족에 몰두하기 십상인 요즘 세태를 질타하는 준엄한 죽비이기도 하다. 스님은 불화를 그릴 때면 화신동체(畵身同體)가 된다. 아무리 작은 크기의 불화라도 화폭을 바닥에 놓은 채 허리를 구부려 화폭과 한 몸이 된 다음에 그림을 그린다.
붓끝에서 그림이 나오지만 실은 온몸으로 그린 것이다. 헌신(獻身)을 통한 열락(悅樂)의 추구. 만봉 스님은 그래서 반드시 예불을 드리고 난 다음 그림을 시작한다.
신심이 깃들지 않은 그림은 불화가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과정이 곧 수행인 것이다.서울 봉원사(태고종)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은 공주 마곡사와 금강산 유점사를 비롯, 경복궁 경회루.남대문.안동 봉정사 등 굵직굵직한 문화유산들에 단청을 남겼다.
대구 전시회는 지난 1997년 4월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스님의 모습에도 이젠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눈썹이 희어지고 등도 휘어졌다. 아직도 붓을 놓지는 않았지만 이번 대구 전시회가 어쩌면 마지막 회향일지도 모른다.
대구사원주지연합회장 원명(元明) 스님(원로회의 부의장)은 "90 평생도 억겁 속에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만봉 스님이 남긴 숱한 단청과 점정(點睛)은 영원한 광명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예지가 될 것"이라며, 많은 불자들의 관심과 동참을 당부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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