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우울증

작곡가 헨델의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1741년 그가 조울증에 걸린 상태에서 작곡했다고 한다. 이듬해 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초연된 뒤 1743년 영국 런던에서 공연됐을 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국왕 조지2세도 감격한 나머지 기립박수를 보냈으며, 조울증을 앓으면서 작곡됐다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유명해지기도 했다. 불멸의 작품을 남긴 예술가 중에는 조울증 환자가 많았고, 그들의 명작은 대개 생각이 샘솟듯 끊임없이 떠오르고 과대망상에 빠지는 '조증' 상태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금 더 비약하면 괴테·발자크·바이런·포·헤밍웨이 등의 문인, 슈만·로시니·베를리오즈말러·라흐마니노프 등의 음악가들 역시 조울증 때문에 명작을 낳았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두뇌 회전을 빠르게 한다는 '조증'은 매사에 자신감과 흥미를 잃고 결국은 자살 충동이나 자살 시도에 이르게도 하는 '울증'처럼 독립해서 오지 않기 때문에 우울증의 부수적 증세라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마음의 감기'라고 불릴 정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울증이 흔하다. 성인 6명 중 1명이 걸린 적이 있거나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한 심리학자는 한국인의 행동에 가장 영향을 주는 동인이 '눈치'라며, 자기 자신의 생각보다 남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행동양식이 결정되므로 체면이 깎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참지 못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우리는 지금 보기 싫은 사건들이 연일 터지는 등 사회적인 병리현상에다 체면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다.

▲우울증 치료에 '가짜 약'이 더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 조사 보고서를 인용, '성 요한의 풀(Saint John's wort)'이라는 약초제, 우울증 치료제인 '졸로프트(Zoloft)'가 실험 대상자의 24%와 25%에 대해 각각 효과를 보인 반면, 설탕으로 만든 약이 32%의 효과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약보다 환자와 의사의 접촉 시간이 치료 여부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반론이 없지 않으나 재미있는 연구임에 틀림없다.

▲젖당·녹말·우유 등 독이 없으나 약리 효과도 없는 가짜 약을 환자에게 속인 채 먹여 치료 효과가 있는 경우를 '플라시보(placebo) 효과'라고 한다. '플라시보'의 어원이 '만족시키는' '즐겁게 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니 심리적인 치료법이며, 이번 연구는 그 설이 근거가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 돌아가는 모습에 우울해져 앓고 있거나 까닭도 분명치 않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도 모두 만족하고 즐거워지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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