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반의 건장한 남자가 쇠약해 보이는 노인을 등에 업고 들어왔다. 미끄러운 목욕탕 타일 바닥을 조심조심 걸어서 샤워기 아래 노인을 내렸다.
그는 노인의 몸에 비누칠을 하면서 정성들여 씻은 뒤 자신도 샤워를 했다. 한참 뒤 노인을 다시 조심스레 안고 온탕 안에 들어갔다.
그는 노인에게 물이 뜨겁지 않으냐고 물었다. "기분이 좋다"고 답했다. 몸을 담근 두 사람은 정겨운 모습으로 잠시도 쉬지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 부자지간이었다.얼굴이 벌겋게 익을 무렵 그는 노인을 안고 나와서 먼저 머리를 감겼다.
팔다리와 등을 밀어가며 꼼꼼하게 노인을 씻어주고 있는 그의 얼굴엔 구슬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참으로 정성스레 노인을 씻기고 있었다.
옆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50대 중반의 어느 남자가 "이쪽 다리는 제가 좀 밀어드리지요"라며 다가갔다. 이어서 "저는 이렇게 모시고 와서 더운물에 편히 씻어드리고, 좋은 옷에다 맛있는 음식을 사드리며봉양할 부모님이 이미 안계십니다. 두 분이 부럽습니다".
세 사람은 금새 가족처럼 친해져서 웃는 얼굴로 서로 몸을 밀어가며 어울렸다.이들을 쳐다보다가 내 부모님 생각이 났다. 평소 건강하게 잘 지내신다는 이유로 무심하게 지내 온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부모님 가시고 나면 뉘우칠게 뻔한데도 옆에 계실 때 자식된 도리를 제대로 실천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웠는가.
불혹(不惑)을 넘겼지만 늘 '철없는 자식'으로심려만 끼쳐 드리고 있는게 더욱 죄스럽다. 나는 '어버이 살아실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가정의 달' 어느 대중목욕탕에서 발가벗고 만난 사람들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이시우(신경외과 전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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