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일을 마무리하는 저녁 무렵, 새얼학교에는 하나둘씩 교사와 학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제 때 배움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던 이들이 늦게나마 주경야독의 향학열을 불태우는 야학(夜學)의 공간이기 때문.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로 이뤄진 새얼학교가 문을 연지도 올해로 벌써 25년째. 하지만 갈수록 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어 고민이다.
남구 대명8동 대구교육대 건너편 가톨릭문화관 내에 위치한 새얼학교(교장 이응욱 성토마스 성당 주임신부)는 지난 1977년 11월 가톨릭 대구대교구 대학생연합회가 야간학교를 개설하면서 시작됐다. '서로 도와 참되이 새 사람이 되자'라는 교훈아래 초등.중등 2년과정의'도미니꼬 야간학교'가 그 출발.
이듬해 초등 8명, 중등 80명이 입학하면서 새얼학교로 이름을 바꿔 새출발했다. 70~80년대만해도 경제 형편이 어려워 정규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10대 청소년들이 학생의 대부분이었다. 83, 84년도에는 재학생수가 최고 220명에 달했다.
지난해까지 졸업생은 모두 470명이지만 20여년동안 새얼학교를 거쳐간 학생들은 모두 2천여명에 달한다. 집안 사정이나 학습 적응이 어려워 중도에 그만 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 새얼학교의 선생님들은 모두 대학생이거나 졸업생들이다. 종교에 상관없이 학업을 병행하며 시간을 쪼개 못 배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젊은이들.
자기가 가진 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이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새얼학교를 떠나게 된다. 그동안 200여명의 교사가 이 학교에서 봉사했다. 교사로 봉사하다 신학교를 거쳐 가톨릭 사제가 된 경우도 있다. 대구대교구내 이창수, 이민락, 박윤조 신부가 바로 새얼학교 교사출신이다.
올해 새얼학교 재학생은 모두 30명. 중등부 2학급, 고등부 2학급을 합해 모두 4학급. 30~40대 주부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하루종일 집안 살림에다 아이와 씨름하다 보면 등교시간이다. 가족을 위해 일찍 저녁밥을 짓고 부랴부랴 학교로 달려온다. 수업은 저녁 6시50분부터밤 10시까지 이어진다.
필수 7과목과 선택(환경.실업) 2과목 등 모두 9과목을 정규 학교와 똑같이 공부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배움을 놓지 않은 결과 올해 졸업예정자 10명 전원이 지난달에 실시된 고졸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개교이래 처음이다. 현재 새얼학교에서 봉사중인 교사는 모두 20명.
교무부장을 맡고 있는 이철호(26.계명대 행정학과 4년)선생님은 군복무시절을 제외하고 3년째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2학년때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새얼학교 학생인 한 아주머니를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하면서 가톨릭에 입문, 지난해 4월 영세를 받기도 했다. 그는 "학생들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누나, 형님뻘이지만 사제간의 정을 나누고 있다"며"가르치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개교 때부터 교감을 맡고 있는 윤종우(57.효성중 교감) 선생님은 새얼학교의 산 증인. 그는 "새얼학교 설립취지는 교육을 통해 교회를 알리는 선교가 그 목적"이라며 "학생과 교사가 가톨릭을 알고 입문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선생님은 요즘 걱정이 많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정규과정에서 자퇴생이 줄면서 야학 학생들도 점차 줄고 있기 때문. 이대로 계속 학생 수가 줄 경우 학교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그는 걱정했다.
새 학기인 오는 9월 보다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새얼학교(053-472-2376,catholic.cadaegu.ac.kr/~saeul)를 널리 알리고 새롭게 출발할 계획이라고 윤선생님은 포부를 밝혔다. 새얼학교 교사들은 '새얼교사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새얼의 모임은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의 모임이 아니라 당신의 은총으로 주어진 사랑의 선물에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당신 뜻의 모임입니다. 진리를 왜곡하는 위선과, 나 자신만을 내세우는 편협한 아집을 버리고, 진리로써 우리 학생 앞에 자신있게 나설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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