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넋새'의 노래

'어떤 얼굴로 당신을 만날까요/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요/잠 못이루고 밤새 뒤척거려서/어두워 보이긴 정말 싫어요/두 번 다신 못볼 거라고/그렇게 체념하며 살았었는데/꿈결처럼 나 당신의 손을 잡고/울고 있네요/이대로 함께 살고파요/하지만 다시 헤어지라 하네요/사랑한다는 말도 못했는데/통일되는 날 우리 다시 만나요'.

지난 4월 말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애절한 사부곡(思夫曲)으로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이산의 시인' 정귀업(鄭貴業.75) 할머니의 사연이 노래로 만들어져 화제다.

▲'서글픈 만남-정귀업 할머니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 띄워져 불리는 이 노래는 52년 전에 헤어졌던 북한의 남편을 잠시 만났던 정 할머니의 애달픈 사연을 다시 극대화했다. 윤민석씨가 작사.작곡하고, 양윤경씨가 부른 이 민중가요는 서글픈 사랑을 서정적으로 풀어놓은 노랫말과 호소력 있는 양씨의 목소리가 어울어져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 민족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정서는 '한(恨)'이라 한다. 다른 민족에게는 이런 정서가 없어 번역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 뿌리는 수많은 외침과 내란, 엄격한 신분사회 등 파란만장했던 역사에서 비롯됐으므로 이 땅의 서민들은 가슴 속 응어리로 한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시(詩)를 가장 많이 읽고, 수많은 시인들이 감정을 응축한 시로 사랑받는 것도 한의 정서와 결코 무관하지는 않다.

▲우리민족에게 지금 가장 한 맺힌 일은 가족과 핏줄을 갈라놓은 채 반세기를 넘긴 민족 분단이 아닐 수 없다. 분단 이후 수절 끝에 북쪽의 재혼한 남편을 잠시 만난 정 할머니가 내뱉은 말들은 어떤 시보다 한의 정서가 절절하고 감동적인 시였다.

'꽃방석 깔아줘도 가지 않을 길을 50년 넘게 훠이훠이 걸어 왔지라우' '지금도 못 만났으면 내 인생이 완전히 끝날 판이제. 아매도 넋새가 되어 울고 다닐 것이여'. 아마도 응축된 한이 꾸밈없이 분출됐기 때문이리라.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 정 할머니의 말들 중의 백미는 '넋새'였다. '두견(杜鵑)' '귀촉도(歸蜀道)' '자규(子規)'의 순수 우리말이라지만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중국에서 들어온 두견의 전설이 이 땅에 들어와서는 '배 고파 죽은 시집간 누이의 환생'으로 바뀌어 민족 정서의 뿌리로 자리매김했다.

미당(未堂)의 시 '귀촉도'도 널리 사랑받고 있지만, 정 할머니의 '넋새'는 우리 민족의 아픔과 사랑을 절절하게 응축한 새로운 시어(詩語)다. 하지만 아프게 아름다운 이 시어가 사라질 날이 간절하기만 하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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