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라시키는 오카야마 서쪽 근교에 위치한 인구 43만명의 작은 도시다. 오카야마역에서 산요혼센 쾌속열차를 타고 15분 정도 달려 구라시키역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5층 이상 건물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5분만 달리면 어느새 눈 앞에 들녘이 펼쳐져 도시라기보다는 한적한 농촌 마을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국도를 달리다 흔히 만나게 되는 작은 도시 이미지와 달리 문화에 대한 애착은 일본의 어느 도시보다 강하다.
에도 시대에 쌀을 실어 나르던 운하와 고풍스런 건물, 강가에 늘어선 버드나무 등이 문화의 향취를 전해주는 구라시키 미관지구와 로댕의 유명한 작품인 '칼레의 시민'이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오하라미술관 등이 문화 도시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함께 시민회관, 문화예술회관, 문화진흥재단 등 다양한 문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다. 특히 시립 예술단이 없는 반면 100여명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오케스트라와 학생오케스트라, 시민합창단, 15개의 시민극단 등이 있어 생활속에서 예술을 추구하는 구라시키 시민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예술을 사랑하는 구라시키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것은 구라시키 음악제다. 구라시키, 고지마, 가마시마 3개 도시 합병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구라시키 음악제는 올해 벌써 16회째를 맞았다.
클래식, 팝, 재즈, 동요, 민속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이 선보이는 구라시키 음악제의 특징은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것. 매년 3월 중순 토요일부터 다음주 일요일까지 9일간 개최되는 구라시키 음악제는 시민들의 오프닝 퍼레이드로 시작된다.
오하라미술관 앞에서 열리는 바이올린 연주회,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개최되는 북과 춤의 향연, 음악제를 알리기 위한 알프스 호른 연주 등 거의 모든 행사가 시민들에 의해 진행된다.
시민 참여형 구라시키 음악제의 하이라이트는 관광정보센터에서 열리는 시민들의 릴레이 피아노 연주회. 시민들로 구성된 실내악단 반주에 맞춰 3분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 연주회에 2천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다.
음악제에 대한 시민들의 열의는 참가 신청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음악제 개최 3, 4개월 전부터 참가 신청이 쇄도하기 시작, 음악제를 앞두고는 참가 희망자가 수천명을 넘어선다. 또 연중 무휴로 개방되는 문화진흥재단 내 연습실에 많을 경우 하루 100여명의 시민들이 찾아와 음악제 참가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음악제 기간 동안 2000석 규모의 시민회관, 885석의 문화예술회관 등이 연일 만원을 이룬다.
게다가 음악제가 관광시즌에 맞춰 열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마파크인 덴마크 티볼리 공원을 모델로 만든 치보리 공원 등을 방문하는 관광객들까지 음악제에 참가하고 있어 음악제가 열리는 동안 구라시키시는 축제의 물결에 휩싸인다.
구라시키 시민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은 음악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민극단이 주축이 된 연극페스티벌이 92년부터 매년 12~2월 사이에 열리고 있다. 전국 우수작품을 전시하는 거리 미술제도 3년에 1번 개최되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영화페스티벌도 개최되고 있다.
이 모든 행사에 대한 지원은 구라시키시가 설립한 문화진흥재단이 맡고 있다. 연 2억엔의 예산 가운데 음악제에 1억엔, 연극제에 2천만엔 등 대부분의 예산을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다양한 예술제에 사용 하고 있다.
구라시키 음악제에는 일본의 유명 음악인들도 초청된다. 시민들에게 고급 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전문 연주자들의 무대도 마련되지만 음악제 주축은 시민들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처음부터 음악제 등에 많은 애정을 가진 것은 아니다.
구라시키 문화진흥재단은 시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 연주 프로그램을 만들어 10년 이상 운영하고 있으며 축제를 앞두고 집집마다 홍보 전단을 배포하는 등 장기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이 결국 소극적인 일본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예술제에 참가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경달기자 sar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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