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은 몽상적이고 다정다감한 성격의 한 의사 부인이 벌이는 애정 행각을 그린 소설이다. '풍기 문란' 혐의로 작가가 기소되는 등 당대를 떠들썩하게 했으나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명작이다.
주인공 에마는 홀아비 지주, 공증인사무소 서기 등과 정사를 거듭하는 동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극약을 마시고 이 세상을 뜬다는 게 줄거리다.
이 소설보다 한참 뒤에 나온 노르웨이 작가 입센의 '인형의 집'은 은행가의 아내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던 주인공 노라가, 그런 넉넉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남편만 바라보며 사는 '인형 노릇'에 심한 염증을 느낀 나머지 집을 뛰쳐나간다는 얘기가 그 내용이다.
이 작품들은 여성의 내밀한 문제를 부각시키면서도 가족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일깨우는 경우에 다름 아니다. '인형의 집'은여성 해방운동에 불을 댕기고, 노라를 신여성의 대명사로 떠오르게도 했지만, 그럼에도 궁극적으로는 가정의 소중함을 역설한다는 평가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의 소설은 크게 달라진 세태를 반영한다. 프랑스의 소설가 쥐스틴 레비의 '만남'에는 소녀가 어머니를 혐오하며 스스럼없이 물리적 폭력을 가하는 장면이, 일본 소설가 시마다 마사히코의 '드림 메신저'엔 아이가 없어 쓸쓸한 사람들이 돈을 내고 일정 기간 빌린 아이와 '의사가족' 생활을 하는 '가족 해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들은 한 술을 더 뜬다. 전혜성의 '마요네즈'에는 '가족은 안방에 엎드린 지옥'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배수아의 '랩소디 인 블루'에는 '가족은 흡혈귀'라는 표현이 서스럼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젊은 세대들이 왜 이토록 가족에 대해 비관적인 인식을 하고 있을까. 더구나 여성작가들이 가족을 '지옥'이나 '흡혈귀'로 몰아붙이는 '정신적 병리 현상'까지 파고드는 정황에 이르게 된 것일까?
사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핏줄 중심의 가족주의에 대한 고정관념과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회 제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의가정 폭력 등 가부장제적 잔재 등을 감안한다면, 가족에 대한 적의와 공포의 태도를 헤아려 볼 수도 있다. 소설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인권마저 짓밟히는 여성이나 어린이들이 적지 않으리라는 짐작도 해보게 한다.
젊은 여성작가 정이현은 최근 어떤 글에서 "지친 영혼을 고결하게 감싸주는 쉼터이기 전에, 혹은 귀찮아서 벗어 던지고 싶은 무거운 짐짝이기 전에,가족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동체가 아니었던가요? 나와 똑같은 피와 살과 감정을 가진 타인에게 '사랑' 또는 '본능'이라는 이름으로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파시즘만큼이나 부당한 일일 거예요.
친밀감을 가장한 폭력이 더 위험한 법이잖아요"라고 절규하듯 오늘의 가족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퍼붓는다. '가족도 결국 타자에 대한 이해와 소통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어렵지 않게 수긍이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가족과 가정은 우리 사회를 이루는 시발점이자 기본단위이며, 마지막까지 중시돼야 하는 최소 단위임에는 과거와 다를 바가 없다. 아름다운 공동체는 가족에서부터 싹이 트고 자라서 사회로, 나라로 확산되며, 가정이 건강하지 않으면 사회도, 나라도 건강해지기 어려렵다는 논리에도 거부감이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핵가족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남편과 아내의 직장 생활로 '주말 부부'가 늘고 있으며, 자녀의 유학으로 '나 홀로 아빠'인 가정마저 적지 않다.
인구 1천명당 결혼 6.7건에 2.8건이 이혼하는가 하면, 가족 해체 양상이 '가족 이기주의'와 '가족 방임주의'의 두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오도된 가치관과 생명 경시의 가치관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가정은 이제 그같은 폐단을 막는 인성을 길러주는 일차적 공간이기 어려워졌으며,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결손)으로 나누는 이분법도 무색해졌을 정도다. '가정의 달'을 맞아 좋든 싫든 가족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떤 가족을 원하며, 원하는 가정을 향유할 준비가 돼 있는지, 우리 스스로 진솔하게 묻고 답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태수(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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