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어떤 스승

"…팀장님은 평소 저희들의 엄한 상사이자 자상한 선배요 인생의 바른길을 가르쳐 주신 더 없이 큰 스승입니다. 스승의 날인 오늘, 팀장님에 대한 저희들의 존경하는 마음을 여기에 모아 담았습니다…".

대기업 팀장급 간부인 K가 지난해 스승의 날 아침에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서자, 미리 와서 모여있던 부서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그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선 감사의 메시지를 낭독하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상자를 내어 놓더란다. 모두들 초등학교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을 모셔놓고 스승의 날 기념식을 하듯 꽃과 선물을 마련하고 '감사의 말씀' 낭독도 했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어색하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더듬거리다가 마지막 박수소리와 함께 '기념식(?)'은 끝이 나고 업무가 시작됐다. 이날 그는 매우 부담스럽고 조심스런 가운데 흥분된 하루를 보냈단다. 얼떨결에 '스승님께 드리는 선물'을 받기는 했지만 '정말 내가 받을 자격이 있는 선물을 받았는가' 싶었다.

'후배들의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보다 더 모범이 되고 바른 선배 역할에 최선을 다하라'는 무서운 주문인 것도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후배들로부터 악덕 선배로 찍히지는 않았구나'싶어 다행스런 마음도 들었다. 그는 이날 이후 매일 아침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고를 때마다 이걸 매고 나갈 용기가 나질 않았단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넥타이 앞에서 차가운 마음으로 거듭 다짐하게 된단다. "오늘도 이 넥타이를 준 후배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그리해서 언젠가는 이 넥타이를 자신있게 한번 매고 나가리라". 참스승은 학교울타리 안에만 계시는 게 아니다.

이시우(신경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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