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족시인 백기만 선생 다시보기

한국 근대 시문학의 개척자 목우(牧牛) 백기만(白基萬, 1902~1969.사진)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상화고택이 있던 계산성당 앞 개울가에 가게가 있던 백기만은 상화와 절친했을뿐만 아니라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구의 문화운동을 이끈 진정한 대구인이었다.

3.1운동 당시 대구고보 주모자로 일제에 항거했다 모진 곤욕을 치렀지만 끝까지 민족얼을 지켰으며, 광복 후에는 예술.언론.교육 등 각 분야에서 향토문화의 창건과 후진양성에 진력했던 향토의 민족시인이었다.

불운한 삶 속에서도 누구보다 대구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근대문학의 선구자였던 목우는 동인지 금성(1923년)과 한국 최초의 '조선시인전집'(1929년)을 발간한데 이어 고월 이장희 유작전시회를 개최한 장본인이다.

고월과 상화 연구의 결정적인 자료인 '상화와 고월'.'씨뿌리는 사람들'을 펴낸 것도 그의 업적이며, 경북문학협회를 창립해 향토문학의 토양을 기름지게 가꿨고, '대구 시민의 노래'를 작사하는 등 일생을 향토의 문화발전에 헌신했다.

이같이 대구에 근대시의 씨를 뿌린 목우가 상화.빙허와 비교할 때 의외라 할 만큼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1930년대 이후에는 시작을 거의 하지 않았고 해방후에는 문학보다 언론과 문화운동에 주력한 때문이란 분석이다.

한때 청마 유치환과 대구의 문화예술계를 주도해 왔으면서도 시집 한권 남기지 못한 아쉬움과 일생동안의 빈곤한 생활환경도 한 이유에 속한다. 그러나 일찍이 민족정신과 사회의식에 눈떠 이땅에 근대시의 뿌리를 내리게 한 선구적 역할 하나만으로도 선생에 대한 평가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1969년 8년의 병고 끝에 남산동 자택에서 회한의 삶을 마무리, 선생의 유해는 대구 신암동 선열공원에 안치됐고 1991년에는 두류공원에 목우 시비가 세워졌다. 올해 탄생 1백주년을 기리는 특별전시회가 20일부터 8일간 대구 MBC와 죽순문학회 공동주관으로 갤러리M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회에는 목우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자료와 필적, 그리고 '개벽'.'금성'.'여명' 등에 발표한 30여편의 시와 평론 등 문학관련 자료 100여점이 전시될 예정.

목우는그리고 이번 전시회를 통해 민족적 지조를 지킨 선각자로 우리나라 근대시의 개척자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윤장근 목우탄생 100주년기념 특별전 공동위원장(죽순문학회장)은 "선생은 온갖 고난 속에서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일생을 강직하고 고결하게 살다간 대구인의 본보기였다"며 "1950년대 젊은 한때 목우와 함께 했던 향토사의 한 단면이 아름다운 일모(日暮)처럼 슬픈 추억으로 늘 남아있다"고 회고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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