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파일 이곳-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악마 대구지회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내 월드컵 관계자들은 국민들 사이에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아 걱정이 태산이다.

국내 월드컵 개최도시 가운데 월드컵 열기가 특히 시들한 도시가 대구다. 이 때문에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공식응원단(서포터스)인 '붉은 악마' 영남지부 대구지회(회장 박동문) 회원들도 대구경기장의 썰렁한 모습이 전세계에 중계될까봐 고심하고 있다. 붉은 악마 대구지회 회원들의 사랑방을 찾아 월드컵 응원준비 상황을 살폈다.

대구시 동구 신천4동 크라운 호텔 맞은편에 자리잡은 호프집 '붉은 악마'. 이곳은 붉은 악마 대구지회 회원들의 사랑방이자 붉은 악마가 공식적으로 상호와 로고 사용을 허용한 전국 유일의 호프집이다.

그래서인지 호프집 건물 외벽에 붉은 악마의 상징인 치우 천왕의 대형 걸개그림이 걸려있다. 또 천장과 벽 등 건물 내부도 국내는 물론 일본과 유럽의 유명 축구클럽 응원 머플러를 비롯 경기홍보 배너, 유니폼과 각종 축구용품들로 꾸며져 있었다.

호프집 주인 이영환(39)씨는 당연히 붉은 악마 회원이다. 이씨는 "월드컵 기념품과 축구용품, 머플러 등 응원용품까지 갖춰 축구팬들에게 판매하는 외국의 서포터스 하우스를 겨냥했으나 자금사정때문에 그 꿈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호프집에서 만난 몇몇 붉은 악마 대구지회 회원들의 축구사랑은 진지하고 뜨거웠다. 붉은 악마 대구지회 김종훈(23.대구가톨릭대 4년)부회장은 대구지회원만 4천여명을 헤아린다고 밝혔다.

부산.울산.대구 등 영남지부내 3개 지회중 대구지회원이 가장 많지만 '기형적 발전'이란다. 부산.울산은 지역연고 프로축구단이 있는 반면 대구에만 프로축구단이 없어 지역 축구팬들이 모두 국가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에 가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 10일 대구에서 열리는 한국대표팀의 2번째 예선전인 대(對) 미국전은 16강 진출여부를 가리는 가장 중요한 경기입니다. 따라서 홈경기의 이점(어드밴티지)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시각과 청각을 총동원한 응원전이 펼쳐져야 합니다.

6만8천여 좌석 중 붉은 악마 응원단에 배정된 좌석은 5천석에 불과합니다. 때문에 일반 관중들도 꼭 대표팀 유니폼이 아니더라도 대표팀 유니폼 색상인 붉은 색 옷을 입고 나와 상대팀 선수들의 기를 죽여야 합니다".

김 부회장은 "대표팀 응원을 붉은 악마에만 맡겨선 상대선수를 압도하는 응원이 나올 수 없다"며 일반 관중들의 협조를 거듭 당부했다. 그는 지난 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네덜란드 대표팀 유니폼을 차려입은 응원단 수만명이 함성을 내지를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는 베테랑 홍명보 선수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네덜란드 응원단의 열띤 응원에 당시 A매치 경력 98회도 소용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첫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해야 축구선진국으로 가는 교두보가 확보된다"면서 축구문화의 선진화를 강조했다. 홈 어드밴티지도 현재의 우리 축구문화가 업 그레이드돼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 축구문화, 특히 대구 축구문화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 대 프랑스전 당시 5대0으로 지고있는 상황에서 관중석에서 파도타기 응원이 나왔어요. 외국에선 홈 팀이 보통 2대0 정도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파도타기 응원을 합니다. 이런 '희한한 광경'을 보고 외신 기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대구의 응원 수준이 이 정도예요".

그는 "전국의 월드컵 경기장 10곳을 모두 돌아보았다"면서 "관전 및 응원문화 수준이 가장 낮아 위험한 곳이 대구경기장"이라고 주장했다. 야구 응원에 익숙해 호루라기를 불거나 폭죽을 터뜨리는 등 축구상황과 맞지않는 응원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경기장에 걸개 그림을 거는 등 응원도구를 세팅하는 대구지회 현장팀의 최철민(21.영남대 1년) 팀장도 대구 관중들의 응원의식을 아쉬워 했다. 지난달 20일 코스타리카 대표팀과의 평가전때 카드섹션 응원을 위해 붉은 색 카드 8만장을 제작, 관중들에게 나눠주고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중들은 카드를 둘둘 말아 박수를 치는 데 사용했다.

그렇다면 붉은 악마 회원들은 문제가 없는가? 그들도 붉은 악마가 일반 관중과 유리된 채 골문 뒤에서 '외롭게' 응원하고 있는 점을 인정했다.

"8만 동호회원들로 구성된 붉은 악마와 달리 일본 축구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울트라 니폰'은 회원 조직이 아닙니다. 붉은 악마의 궁극적 목표도 발전적 해체에 있습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국가대표팀의 파란색 경기복이 100만장 이상 팔릴 만큼 저변이 확대되고 축구문화가 선진화되면 붉은 악마는 해체해도 됩니다. 전 관중의 '붉은 악마화'를 기대합니다".

그들도 일반 관중과 함께 호흡하는 응원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먼저 대구지회원들은 지난달 20일 코스타리카와 평가전이 열린 대구 경기장에서 '붉은 옷을 입고 경기장을 찾자'는 전단 8천장을 회비로 자체 제작, 관중들에게 나눠주었다.

또 '천하통일 대한민국'을 새긴 가로 16m 세로 13m짜리 대형 걸개를 이날 경기장에 내걸었다. 이와 함께 20여곡에 이르던 붉은 악마의 응원가도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 'GO WEST' 등 5곡으로 줄였다.

붉은 악마 대구지회원들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세로 40m, 가로 60m 대형 태극기를 대구에서 제작, 지난달 27일 인천서 열린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사용한 것이다. 최철민 팀장은 "대구에서 원단이 생산되기 때문에 초대형 태극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붉은 악마 대구지회는 지역 월드컵 붐 조성을 위해 한국-미국 예선경기 전날인 6월 9일 대구 국채보상공원에서 '붉은 악마 콘서트'를 밤샘 개최한다. 이날 신해철, 안치환, 윤도현 밴드 등 붉은 악마 공식 앨범의 응원가를 부른 가수들을 초청하며, 10일 미국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승리할 경우 그날 밤 앙코르 공연을 다시 개최할 계획이다.

조영창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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