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오르는 사람 누구에게나 높고 낮은 등급이 없다는 '무등산'. 그래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또 오를까. 입구 풍경은 휴일 팔공산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북적이는 인파, 아이들 손을 잡고 산행에 나선 가족들, 입구에 늘어선 식당과 상점들. 그러나 무등산의 품은 넓고 넉넉하다. 오를수록 기품이 당당하다. 3시간 이상 달려온 외지인을 그렇게 품안으로 받아들인다.
무등산에 오르는 길은 너무 많다. 초행길의 사람에겐 헷갈릴 정도.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증심사와 원효사(무등산장)쪽 두 가지.
일단 증심사쪽으로 방향을 잡긴 했어도 대구.경북서 왕복 6, 7시간이나 걸리는 이곳이 뭐 특별난 게 있을까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그러나 그 의구심은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사라진다. 증심사 아래에 자리잡은 의재미술관을 지나면 여기가 예향(藝鄕) 광주임을 실감한다.
주차장에서부터 당산나무가 있는 곳까지는 산책로나 다름없다. 본격적인 산행은 여기서부터다. 물을 충분히 준비하는 게 좋다. 가파르지 않은 길을 1시간 가량 오르다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인다.
여기가 지리산의 세석평전인가 싶을 정도로 넓다. 중머리재다. 뒤돌아서면 광주시내가 발아래 한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섣달 그믐이면 광주사람들이 놀이마당을 펼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가파른 곳으로 바로 오르면 중봉코스. 하지만 오른쪽으로 우회해서 장불재로 향하는 산길이 아기자기하고 피곤하지 않아 더 좋다.
중머리재 바로 위의 장불재는 지금 한창 철쭉꽃이 지고 있다. 지난 12일 때마침 이곳에서는 제5회 무등산 철쭉꽃 큰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산 정상부근 해발 800m 고지에서 들어보는 남도가락이 신명난다.
한쪽에선 젊은 아줌마 둘이 배낭을 멘 채 덩실덩실 춤사위를 선보인다. 중머리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보는 무등산은 완만하다. 화순쪽으로 난 백마능선은 가파름이 없다. 능선의 곡선이 여성스럽다. 하지만 정상 쪽의 기암지대는 경치가 딴판이다.
여기서 입석대(해발 1,017m)까지 400m 구간이 무등산 산행의 백미. 때늦은 철쭉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입석대와 서석대는 가까이 갈수록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만큼 위압적이다.
하지만 입석대는 바로 앞에 서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입석대에 올라서면 고대의 신전에 들어선 기분이다. 예리한 칼날로 바위를 빚었다. 20m가 넘을 것 같은 4각 수직 돌기둥 40여개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군데군데 세월의 무게에 눌려 무너진 돌기둥도 있다.
흙 한줌 없어 보이는 돌기둥 사이에서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푸른 잎을 피운 나무에게서는 끈질긴 생명력을 본다.
누군가 바위에 새겨둔 글귀 위로 이끼가 더께더께 앉았다. 칼로 벤 듯 세 조각난 돌기둥은 기념사진을 찍으면서도 무너질까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만큼 아슬아슬하다.
서석대(해발 1,100m)는 정상쪽으로 500여m 더 올라야 만나는 수직 바위병풍. 20~30m의 깎은 듯한 기암들이 광주시내를 굽어보고 있다. 한껏 몸을 웅크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철쭉꽃이 지천이다. 하산을 늦추고 싶은 강렬한 유혹이다. 정상인 천왕봉(해발 1,187m)이 지척이건만 군사시설로 통제구역이라 아쉽다.
단조로움을 피하려면 하산은 중봉코스로 잡는 게 좋다. 다만 무등산은 자주 오르내리는 현지 주민들을 따라 하산해야 길을 잃지 않는다. 하산을 서둘다보면 자칫 길가의 야생화들을 지나치기 쉽다. 눈을 땅바닥으로 돌리면 갖가지 야생화들이 피곤을 잊게 만든다. 무등산공원 관리사무소 062)265-0761.
등산로=증심사주차장-0.8㎞-증심교-0.6㎞-의재미술관-0.2㎞-증심사입구-0.3㎞-당산나무-1.7㎞-중머리재-0.9㎞-용추삼거리-0.6㎞-장불재-0.4㎞-입석대-0.5㎞-서석대(증심사에서 서석대까지 왕복 4시간)
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맛집
증심사 입구에 즐비한 식당가는 광주에서 이름난 보리밥촌. 산나물이 한상 가득 나온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빈 보리밥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고향 맛의 유혹이다. 하산길 입맛을 돋구는데는 그만. 특히 이곳은 맛깔스런 생김치로 소문난 집도 많다. 보리밥 1인분에 5천원.
▒둘러볼 만한 곳
의재미술관 건너 춘설헌은 우리나라 남종화(南宗畵)의 대가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1891~1977)화백이 작품활동을 하며 후배를 양성하던 곳이다. 특히 우리 명차인 춘설(春雪)차가 이곳에서 난다. 증심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오르는 차밭은 잘 알려지지 않은 명소. 예향의 향기를 더 맡으려면 6월 2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현장을 찾아볼 일이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