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대구는 현대미술의 메카였다. 요즘 서울에서 대가(大家) 대접을 받는 이들도 그때만 해도 지역 미술계 주변을 기웃거리곤 했다.
그 중심에는 이강소(59.李康昭)라는 걸출한 화가가 있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고향 대구로 내려온 그는 과감하고 실험적인 미술을 시도하면서 그림에 대한 기존 개념을 부수는 데 주력했다. 낙동강변에서 모래를 쌓거나 돌에 숫자를 써 던지는 식의 파격적인 행위로 한국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 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는 어떻게 변했을까. 그가 24일부터 6월22일까지 이현갤러리(053-428-2234) 개관을 기념, 개인전을 연다.
물론 이제 그에게 파괴적인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70년대 후반부터 회화에 주력, 큰 작가의 반열에 올랐고, 외국에서도 적지않은 명성을 얻었다. '오리(乙)'같은 모양의 리드미컬한 붓터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될 정도로, 동양적인 정서와 명상적인 화면에 집중해왔다. 설치와 영상이 판을 치는 요즘에도 그의 작업은 여전히 위력적이다.
"수십년간 회화가 예술의 표현방식으로 유효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왔습니다. 아직도 고민하는 과정이지만, 회화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가능성이 많습니다". 형식보다는 예술적 감흥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오리, 새, 집, 산, 나룻배 등이 자주 나온다. 소재뿐만 아니라 화면의 여백과 기품있는 구성에서도 다분히 한국화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의 화면에는 유려한 붓질에서 나타나는 열정과 무작위적으로 끄적거린 듯한 여유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구상적인 듯하면서 추상적이고, 얕은 듯하면서 깊고, 단순한 듯하면서 복잡한 것도 그만의 특징이다. 그가 서양화 재료를 통해 동양적인 주제를 현대적으로 표현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전시회에 사진과 석판화를 혼합한 작품을 몇점 선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중국 등에서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에다 자유분방한 필선을 섞어놓은 작품들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조만간 회화적인 요소를 아예 없애고 초점이 불분명한(?) 사진만으로 전시회를 열 것"이라며 끊임없이 자기변화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
그는 요즘 무척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아들, 이달초 여동생(조각가 이강자)이 잇따라 그의 곁을 떠났다. "지난해부터 7, 8개월동안 작업을 제대로 못했어요. 전시회가 잡혀있으니 어쩔수 없이…". 큰 작가는 자신의 슬픔마저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모양이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이현갤러리=24일 이강소 개인전을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나선다. 현대미술작품을 중심으로 1개월 정도의 장기 전시에, 대관없이 1년에 5, 6차례 기획전만 여는 획기적인 운영방식을 채택했다.
10, 20대가 즐겨찾는 중구 동성로 2가 프라이비트 4층에 위치해 있다. 대표는 영남대 대학원에서 예술행정을 공부한 이현령(43)씨이고, 큐레이터는 지역에서 작품 및 평론 활동을 해온 최창규(37)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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