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연차 대구 온 이해인 수녀

아침햇볕이 하얀 성모상 어깨에 내리는 아침, 이해인(57) 수녀를 만났다. 전날(21일) 밤 늦도록 대구 월성성당에서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이란 강연을 가졌던 참이다.

본리성당 뜰에서 이해인 수녀를 맞아 인사를 하려니 마침 아줌마 신도들이 "한번 뵙기라도 하자"며 곁으로 모여들었다.그녀는 자신의 소박한 단상이 적힌 책갈피에 이름을 곱게 써 나눠줬고 또다른 그녀들은 아이처럼 기뻐했다.

"제가 팬이 좀 많아요(웃음)". 사인을 바라는 이들을 위해 손수 마련해 가지고 다닌다는 책갈피 뭉치의 배려가 퍽 아름답다.

-근황은 어떠셨나요.

▲독자들이 보내는 e메일을 읽고, 게시판에 좋은 글을 쓰면서 보냅니다. 하도 오라는데가 많아 힘에 붙이기도 하지만,"수녀님 제가 그 글을 보낸 사람입니다"라며 미지의 독자가 얼굴을 불쑥 내밀면 그렇게 마음이 흐뭇할 수 없어요. 평소엔 학교(부산 가톨릭대 지산 교정)에서 '생활속의 시와 영성'이란 강의를 하고 있어요.

-목소리가 참 맑고 낭랑합니다. 누님, 소녀같은 이미지라고들 하지요?

▲제가 사기꾼처럼 보이진 않잖아요?(웃음) 저의 모습에서 순수와 안정을 찾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려 해요.하지만 공인으로서의 꾸며진 인자함만을 보여주는 것은 올바르지 않아요.

-수녀님에게 시작(詩作)은 어떤 의미인가요?

▲시는 삶에서 저절로 익어 떨어지는 열매같아요. 글을 쓰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됐지요(이해인 수녀는 순수창작 시집, 산문집 등 11권의 저서와 다수의 번역서를 냈다). 글이란 매체는 '교리'나 '강연'과 달라서 직업, 출신, 종교를 초월해 다른 이들과의 공감이 쉬워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너를 위해 내가 마음놓고 울어주는'(詩 '파도의 노래' 중)것이 글을 쓰는 이유가 아닌가 합니다.

-전날 강연에서 '언어' '말'에 대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 세상에 속도감이 붙으면서 말이 충동적이 되는 것 같아요. 한참 전화로 잔소리를 하다 실수로 수화기를 내린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그랬다는군요. '들어주기만 해줘서 고맙다'구요. 자신이 하려는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때 쓸쓸함을 느껴요. 미움, 자만심, 허영심, 교만함이 들음을 방해하고 있어요. '잘 말하고 잘 듣는' 사람이 아름답고 성숙한 이지요.

-(종교에 기대는 방식을 떠나)한 인간이 맑고 순수하게 사는 방법은 뭔가요?

▲노력해야 합니다. 선함과 순수에 대한 갈망은 있지만 이것을 얻으려면 순수에 대한 믿음을 갖고 키워나가야 해요. 진실에 대한 신뢰가 필요해요. 하지만 착한 것만으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을 요즘 해요. 좀더 지혜로워야 하지 않나하고 말입니다. 이번에 낸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은 이런저의 생각을 적어 보낸 편지쯤이겠지요.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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