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이태수의 문학의 본질은 정

문학에 뜻을 두고 애태우는 사람을 일컬어 성별과 나이를 뛰어넘어 흔히 '문학 청년'이라 한다. 젊은 시절부터 간직해온 문학에의 열망 때문에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신인 모집 알림만 보면 가슴이 뛰는 노인 역시 영락없는 만년 '문학 청년'이라 할 수 있다.

이 수사에는 우리 사회에서 문학을 지망하는 일이란 젊은이들만의 몫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뒤집으면, 먹고 살기 바쁜 중장년에 이르러서조차 '문학병'에 걸려 있는 사람은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면박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문단의 핵심에 자리매김한 장년층 문인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 나이에 발랄한 감수성으로 등단했다. 심지어 시인 이형기 이유경, 소설가 최인호 황석영 등이 적지 않은 문인들이 고교시절에 문단에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40대 이상이 압도적일 정도로 그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우리 사회도 이젠 폭과 깊이가 달라졌다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두고 '젊은층의 문학 이탈' 현상이라고 우려하는 시각이 더 우세한 형편이다. 영상매체와 인터넷 등의 확산으로 날이 갈수록 문학서적이 팔리지 않고, 대학의 우수한 자원들도 시.소설 등 순수문학보다는 요즘 각광 받는 장르 쪽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젊은층이 문학을 외면하는 분위기로 문학이 죽음에 이르고 있다고 보는가 하면, 문학 자체의 변하지 않은 가치에도 불구하고 토양은 황폐해질 뿐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이런 세태에 92세의 시인.수필가이자 영문학자인 피천득 옹의 문학 인생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해 보인다. 23세 등단한 그는 지금까지 '문학 청년'보다 더 열정적이고 순수하게 문학의 진정성을 지키며 우리 말과 글을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

최근 '내 문학의 뿌리'라는 문학 강연에서는 '사상이나 표현 기교에는 시대에 따라 변천이 있으나 문학의 본질은 언제나 정(情)'이라며, '문학에 있어서 정의 극치는 아무래도 연정(戀情)'이라고 강조해 화제다.

▲문학 창작은 이미 대량의 생산 체제를 갖춘 공장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에 이르렀으며, 작가는 이익을 추구하는 '교묘하기 짝이 없는 슈퍼마켓의 장사꾼'이 돼 버렸다는 화살을 피하기 어려워진 것도 현실이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인생을 '모래로 집을 짓고 빈 조개를 가지고 노는 바닷가의 아이'로 비유한 바 있지만, 문학의 중심에 '연정'을 두는 '거문고 타는 아이'(琴兒) 피천득 옹은 마치 그의 수필 속의 청자 연적과 난과 학처럼, 그가 예찬해마지 않는 5월의 신록처럼,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순수' 그 자체를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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