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저녁 잉글랜드와 한국대표팀의 경기를 관전한 사람들은 대 스코틀랜드전에 이어 또 한번의 후련함을 만끽하였을 것이다. 특히 전반전에 오언의 선취골을 먹을 때 역시 안되는 모양이구나 하였다가 후반 7분에 박지성의 그림같은 동점골이 터졌을 때 느낀 감동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이제 불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체육행사가 아니라 사회전체적인 중대한 변화의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는 특히 한국사회가 지금 정치적으로 아주 미묘한 시점에 놓여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는 과거 88올림픽이 군사권위주의 체제의 종식을 재확인하였다는 계기로 작용하였던 것과 비교할 수 있다.
냉전극복 상징 국민적 축제
2002 한일공동월드컵은 한국에 있어서는 외환위기의 완전한 극복과 한반도 냉전체제의 극복을 상징하는 국민적 축제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구도를 벗어나서라도 월드컵은 축제가 없는 한국사회에서 모처럼 찾아온, 일상을 벗어나 마음껏 소리지르고 미치도록 흥분하는 것이 허용되는 희한한 기회이다.
민주노총이 22일부터 단계적인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노동자들에게 있어 때로는 파업 역시 일종의 축제이다. 일상의 권태로움과 찌듦에서 벗어나서 동료애와 집단적 자신감 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파업기간 중의 노동시간 손실에도 불구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더욱 생산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약일수록 정확한 시점에 사용하여야 되는 것처럼 파업 특히 총파업이라는 노동자운동의 마지막 무기는 전체 사회적인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여 사용하여야 그 효력이 극대화 될 수 있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정치적 판단 능력 즉 정치력의 문제이다.
민주노총으로서는 이것이 2002년 임단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일 수도 있고 혹은 2002 월드컵을 의식하여 정부나 사용자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긴장 해소 기회
그러나 총파업 전술을 사용할 만큼 지금의 노동정세가 비상한 것도 아니고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는 대중노동자단체가 월드컵을 볼모로 한 전술을 구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사회가 월드컵 개막 직전의 총파업전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물론 정부가 한국이 주관하는 세계의 큰 잔치에 앞서서 구속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법적 관용을 베풀어 잔치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수는 있었다. 어떤 형식이건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사법처리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다면 민주노총에 대한 정부의 설득력이 더욱 강했으리라는 점에서 이는 아쉬운 일이다.
한국사회는 정치, 사회적 갈등과 현안으로 항상 고도의 긴장이 감도는 사회이다. 개인이나 사회가 축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이런 긴장과 갈등으로부터 순간적으로 해방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 치유할 수 있는 여유와 힘을 다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는 31일부터의 월드컵 행사 기간을 정치, 사회적 휴전이 시행되는 명실상부한 축제의 기간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월드컵 기간 한달을 제외하고라도 싸울 시간은 충분하니 이 기간은 차라리 각자 새로운 싸움을 위한 힘을 비축하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이런 면에서 월드컵 기간 중 지방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것은 유감이다. 출마자와 운동원들도 이 기간 중에 지긋지긋한 표계산으로부터 해방되어 팡팡 터지는 축구 골에 몰입할 수 있다면 차후 더욱 신나게 선거전을 벌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또 누가 아는가? 대망의 16강이 아니라 8강, 4강에 기적같이 한국축구가 진입한다면 현재의 쟁점들이 너무나 시시하고 하찮은 일이라 대범한 양보와 화끈한 결단으로 술술 문제가 풀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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