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CEO 총장님

힘이 가끔씩은 논리를 앞설 때가 있다. 힘이 약자에 대한 '폭력'으로 휘둘릴 때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자기 보호나 발전을 위해 사용된다면 민주주의에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무턱댄 집단주의나 연고주의, 포퓰리즘과는 다르다. 소위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세방화(glocalization)의 물결 속에서 지방민들의 욕구는 흔히 '힘'으로 나타나고 있다.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 힘의 주체는 지방민이다. 그러나 지방분권을 주창하는 지방정부와, 지역발전을추구하는 지역경제계, 그리고 그 힘을 승화시키고 배가(倍加)시킬 능력을 가진 지방대학이 그 무게를 지탱해주지 않으면 '지방의 논리'는 설자리를 잃게 된다.

지역개발 지역대학 손으로

그 중에서도 지방대학의 위상은 독특하다. 지역이 역동성과 구심점을 잃고 방황할 때 용기와 자양분을 불어 넣어주는 '인큐베이터'역할은 지역 대학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 아닌가. 대학은 이제 권위와 지식의 상징만은 아니다. 지역과 혼재되지 못한 대학은 수도원(修道院)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지역의 사정을 보자. 대구는 전국 16개 시·도 가운데 지역총생산(GRDP)부문 꼴찌인데다 '전국 3대도시' 명예에서 밀려난 지오래 됐다. 지역 주도산업은 붕괴됐고 장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산업은 아직 맹아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의 인재 유출을 보면 심각한 수준이다.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전국적인 부작용이지만 어지간한 지역의 국립대학은 내년도에 정원을 채우기에 급급할 것이다. 이같은 지방대학의 공동화(空洞化)는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방대학이 점차 지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민의 사랑을 바탕으로 성장해야할 지방대학이 도외시되고 있으니그 유기적인 생명력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지방대학의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심해져 대학이 거대한 '블랙홀'로 전락한다면 지역의 미래는어디에 있는가. 이제 지역 문제를 정치나 행정에만 맡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학이 갖고있는 특유의 창의 정신과 혁신 문화를 지역에 침투시켜야한다.

'단순 지식생산'에서 벗어나 같이 참여하고 협력하는 대학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오늘날의 화두인 지식기반(knowledge-based)사회의문지방을 넘는 데는 지역 대학이 선두적인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때마침 경북대 총장선거가 눈앞에 다가왔다. 총장직선제는 교수사회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한다는 장점은 있으나, 선거 과열로 인해 내부구성원들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단점이 극단적으로 노출돼 직선제를 치른 대학치고 이기적 집단주의로 조각나지 않은 학교가 없을 지경이다.

경북대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문제는 지방 경제가 처참히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해야할 지방 국립대학이 아닌가.물론 신임 총장이야 교수들에 의해 선택되겠지만 지역민들은 당장 선출될 총장이 과연 지역에 어떤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조직 운영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의 하나는 경영자의 능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지역 대학이 지역민과 운명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면 '근엄한' 총장님에서 탈피, 이제 최고경영자(CEO)형 총장이 돼야할 것이다.

근엄함보다 경영마인드가 필요

작년 7월 취임한 하버드대 서머스 총장은 개혁을 시도하면서 곳곳에서 저항에 부딪혀 고전하고 있다. 교수와의 갈등으로 흑인교수 앤터니 애피아트가 프린스턴대로 이적하더니 '스타교수' 코넬 웨스트도 그쪽으로 건너가버렸다. 이어 제프리 삭스 경제학 교수도 컬럼비아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서머스 총장은 지난 4월 복잡한 기관을 운영할 줄 아는 지혜와 경험을 앞세운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을 새 이사로 영입, CEO로서의 총장 위상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 구마모토(態本)대학은 아예 '지역개발은 지방대학의 손으로'를 모토로 설정, 국제적 안목이 있고 지역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인재 육성에 전력투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실적보다 지위를 선택하고, 결과 규명보다 인기를 택하고, 의견충돌보다 조화를 선호하는 현학적 지식인이 총장이 되는 것을 지역민들은 원치않을 것이다. 지방대학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을 적어도 '과거수준'으로 되돌려 줄 'CEO총장님'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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