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가 없는 일요일엔 가끔식 아내와 함께 간단한 의료장비를 챙겨 싣고 가까운 시골로 간다. 의사로서 남다른 사명감이나 봉사정신이 투철해서가 아니라 '의사 없는 곳에 의사로서 가보고 확인하는 일'이자 '돈벌이 아닌 일에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실천해보는 일'이다.
산기슭 외딴 마을에 찾아가서 "허리 편찮은 분은 마을 회관으로 오세요"라고 알리고 나면 까맣게 그을린 채 허리굽은 노인들이 모여든다.한분 한분 차례대로 만나보면 모두가 환자. 그분들 가운데엔 농번기가 끝나고 나면 도시에서 온 아들 차를 타고 한번씩 의사를 만나는 분도 있지만일부 노인들은 아무리 몸이 아파도 대충 참고 살아간단다.
그래도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면 진통제 한 알 구해 먹고는 아랫목에 자리 깔고 누워서버티다보면 낫는단다. 그래서 진통제는 시골에서 상비약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내가 '무의촌 진료봉사'라는 마음으로 시골길 찾아 다닌다는 게 어쩌면'사치'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결국 이런 분들에게는 "하루바삐 시간내어 가까운 병원을 찾아가 보시라"고 거듭 권한 뒤 일시적 처방에 불과한주사 한대로 마무리할 수밖에.
이미 국민모두가 의료보험 혜택을 입을 수 있게 됐고, 다양한 의료기관이 앞다투어가면서 첨단 진료시설을 들여놓고 있는 이 '21세기형 의료 현실'이그 시골 사람들(비단 시골사람들뿐이랴만)에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약 냄새 나는 가방 몇 개 챙겨들고 '그들을 위하여' 찾아 나선 '나'는 뭔가?
한해 10조원 어치의 음식물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이 땅위에 끼니를 굶고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주린 배를 안고 허기에 지쳐 있듯이,이 '시골 어른'들도 우리 사회의 화려한(?) 의료복지의 그늘진 뒤안에 무참히 버려져 있는 건 아닐까? 이런 혼돈속에 헷갈려온 내가 허술하기짝이 없는 진료보따리를 싸들고 나서는 이 어설픈 '무의촌 진료봉사'는 계속되는 게 옳은가?
이시우(신경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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