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서예가 이상근씨

서예가 이상근(李相根.48)씨는 30년째 무궁화를 그리고 있다. 이씨의 화선지에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이 아니라 무궁화가 늘 우선이다. 국화(國花)인 무궁화를 그리는 작가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이씨는 무궁화를 문인화의 영역으로까지 승화시켜보자는 뜻에서 학창시절 붓을 잡은 이후 지금까지 줄곧 무궁화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그의 손에서 피어난 무궁화만 해도 수십만 송이가 넘는다.

이씨는 요즘 하루종일 서실(書室)에서 질좋은 닥종이에 무궁화를 그리고 있다. 월드컵 문화축제의 하나로 무궁화 그림 무료보급에 나섰기 때문. 대구에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6, 8, 10, 29일)이면 이씨는 경기장을 찾는 시민들에게 무궁화 그리기 시연회와 함께 모두 2002점의 무궁화 그림을 나눠줄 계획이다.

지금까지 완성한 작품은 400여점. 하지만 대회날까지 그리 시간이 많지 않아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부지런히 붓을 움직이고 있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화제(畵題)도 좋은 문장만 골라 쓰는 등 정성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씨는 무궁화 그림을 그릴 때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며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다.

이씨는 무궁화와 인연이 깊다고 말했다. 어릴적 시골마을 여기저기에 피어 있는 무궁화를 보며 자랐다는 그는 비가 온 후 물방울이 맺힌 무궁화꽃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붓을 잡게 된 것도 바로 무궁화가 계기다. 무궁화를 그려보고 싶은 소망이 늘 가슴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학창시절 부모님에게는 영어학원에 간다고 속이고 대신 붓글씨를 배우기 시작했다.

웬만큼 붓이 손에 익자 지난 72년부터 무궁화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10여년동안 무궁화를 그리는 데 전력을 다했다. 서실 밖으로 내놓지 않았던 그림들을 처음 세상에 선보인 것은 지난 85년 첫 개인작품전 때. 많은 무궁화 작품을 내걸자 반응은 엇갈렸다. 기성작가들은 문인화의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외면했지만 관람객들의 반응은 좋았다.

그래도 이씨는 무궁화를 고집했다. 광복 50주년을 맞은 1995년은 이씨에게 뜻깊은 해다. 두번째 작품전. 이씨는 대구시민회관 전시실을 전부 무궁화 그림으로만 채웠다. 대작과 소품, 부채그림 등 다양한 형태의 무궁화 그림을 공개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이리저리 변통해 겨우 마련한 전시회였다.

이씨는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는 뜻에서 마련한 전시회라 힘드는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이씨는 전시회장을 찾은 학생들에게 일일이 무궁화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 등 국화의 소중함을 전파했다. 그의 이런 노력이 공감을 얻은 탓인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던 작가들도 조금씩 이씨의 마음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격려도 해주고, 더러 호평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힘을 얻은 이씨는 서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앉아서 그리는데 만족할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든 축제가 열리는 곳이면 찾아가 무궁화 그림을 그려 나눠주기로 마음 먹었다.

달구벌 축제, 안동 세계유교문화축제, 무안 연꽃축제 등 각종 축제가 열릴 때면 주최측에 통사정하다시피해 부스를 마련, 무궁화 그림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무궁화 그림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터였다.

대구시 서예대전 초대작가이기도 한 그의 이런 체신머리없는(?) 행동에 많은 작가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에 아랑곳 하지않고 어김없이 축제장을 찾아 나섰다. 이씨의 그림을 본 많은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너도나도 그림을 얻어 가는 등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자비를 들여 화제(畵題)를 영어, 일어 등으로 번역해 외국인들이 그림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무궁화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담백하고 순수한 멋이 있다고 무궁화 예찬론을 펴는 이씨는 "우리 국화인 무궁화가, 그것도 한국인이 그린 그림이 세계 각국의 가정에 걸린다면 더없이 좋은 문화홍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나를 내세우는 것보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바로 책과 서예에서 배우는 교훈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이씨는 이제 자기 할 일은 다했다며 사람들이 무궁화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깡마르고 작은 체구. 하지만 그의 눈빛과 표정에는 결연한 의지와 외곬 인생을 걸어온 고집이 강하게 배어 나온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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