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림이야기-미술의 반란, 비디오 아트

지난달 31일 서울 월드컵 개막식. 무용수들이 춤을 추고 있는 가운데 거대한 종이 그라운드에서 솟아올랐다. 종의 네면에 TV화면을 매단 것으로, 작품 이름은 '평화의 종'. 작가는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이었다.

그가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 93년 대전엑스포에서도 작품을 내놓았던 것을 볼때, 국제행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작가다. 물론 그가 애국심으로 하는 일은 아니다. 한국은 자국출신의 유명 작가를 등장시켜 대외에 문화력을 과시했고, 백남준씨는 전세계에 중계되는 행사에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으니 둘다 괜찮은 장사가 아니겠는가.

백남준은 자신이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않고, "한국이 해준게 뭐 있냐"는 얘기를 심심찮게 해왔다.하기야 박찬호·박세리 같은 운동선수와 홀로 작업에 몰두하는 예술가의 정신세계가 비슷할 수는 없다. 솔직히 한국에 살면서 우리와 비슷한의식구조를 갖고 있다면 오늘날의 그가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어쨌든 그는 TV하나로 한국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서양인이 쓰는) 세계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됐다. 음악가나 행위예술가로 알려진 그는 1963년 대중문화의 우상으로 부상중인 텔레비전 13대를 이용, 독일의 소도시 부비탈에서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시회를 연다.

그후 40년. 요즘 열리고 있는 광주비엔날레에 가보면 온통 비디오작품이 판을 치고 있다. 전시장 곳곳에서 현란한 영상이 돌아가고, 영상을이용한 기발한 착상들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대중문화의 위세에 눌린 미술이 또하나의 반격이자 대안으로 선택한 분야가 비디오아트인 셈이다.

비디오아트에 빠트릴 수 없는 작가가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다 2년전 58세의 나이에 작고한 박현기 선생이 바로 그다. 그는 70년대 후반 국내에서 처음으로 비디오작업을 시작, 화려하고 상업적인 백남준과는 달리 정적이고 명상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다.

자신을 '비디오작가가 아니라 텔레비전 작가'로 부르던 그는 TV화면에 돌을 등장시키고 TV의 위와 아래와 돌을 배치하는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싶다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대구아트엑스포(신라갤러리 부스)에 가면 된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던 나이에 타계한 것이 대구미술계의 큰 손실입니다"(이교준 대구현대미술가협회장) 백남준은 중풍으로 훨체어 신세를 지고 있고, 박현기는 가고 없는 것을 보면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의미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것 같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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