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월드컵 '신바람'

누군가 한민족의 힘의 원천은 신바람이라 했거니와 요즘 우리 모습이 그렇다. 어쩐지 이번에는 무언가 이뤄낼 것만 같은 예감속에 모두가 신명이 났다. 코흘리개에서부터 파파할아버지까지 앉으나 서나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그 모습이야말로 88올림픽 때 잠깐 보였던 바로 그 화합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 보기만 해도 즐겁다.

▲전국은 지금 '공짜'천국이 되고 있다. 수많은 유통업계와 금융업계, 벤처기업들이 16강 기원 경품을 내놓는가 하면 부산의 어떤 음식점은 월드컵 기간동안 '외국인에겐 무료'란 파격 세일을 내세운다.

또 대구의 어느 금은방 주인은 지난달 26일 자기 가게에서 금목걸이를 훔쳤던 세네갈 선수에게 1돈쭝의 금돼지를 선물했다고도 한다. 전주에선 한국팀이 16강에 들어가면 전주비빔밥을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경기도는 16강만 되면 2천2명에게 경기미(米) 10㎏씩 주겠다고 나섰나 하면 어느 외식업체는 16강 가면 피자가 공짜 등등…. 한국은 지금 16강 신드롬에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6·25전쟁 때 참전, 수많은 사상자를 낸 터키선수단을 위한 '보은(報恩)'의 응원은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바스트, 바스트, 투르키에(터키 선수들이여 압박하라)' 600여명 서포터스의 열띤 응원에 터키에서 날아온 500여 터키 응원단이 되레 놀라버렸다니 한국과 터키 양국의 우의를 다지는 데 월드컵이 가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열띤 응원에도 불구, 한국인 주심이 터키선수 2명을 퇴장시키는 '석연찮은' 판정을 한 것은 '옥에 티'였던 것 같다. 주심이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마는 "우리는 브라질을 제압했지만 심판을 통제할 수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주심은 없었다"는 터키팀 감독의 말이 어쩐지 마음에 걸린다.

▲어쨌든 전국은 지금 월드컵 열기가 뜨겁다. 수많은 자원 봉사자가 기꺼이 나서 '환경'과 '문화', '정보'의 월드컵 축제를 위해 애쓰고 있다니 흐뭇하다. 월드컵 개막식날 서울의 차량 부제 운행 방침에 동참한 시민이 94%를 넘었다는 사실만 봐도 한층 성숙된 시민의식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88올림픽 때를 기억하면 모처럼의 질서의식이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 버릴까 덜컥 겁부터 난다. 88올림픽 때도 산뜻하고 모범적으로 행사를 치렀지만 끝나자마자 질서고 뭐고 할것 없이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렸던 게 아니던가. 이번만은 부디 달았다가 금방 식는 '냄비근성'만은 던져버려야 할 것 같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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