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데스크-월드컵 첫승과 문화 알리기

드디어 해냈다. 히딩크호가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폴란드를 상대로 월드컵 첫승을 따내던 그날, 아 코리아는 온통 황홀한 밤이었다.

대 폴란드전이 열린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 뿐만 아니라 서울 광화문에서, 부산 해운대에서,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 온 국민은 '오~, 오~ 코리아'를 목청껏 외치며 이제야 한국축구의 진면목을 드러낸 감격을 밤새워 자축했다.

사실 지난달 31일 '2002 코리아-재팬 월드컵' 본선이 개막되면서부터 한국대표팀의 첫 게임이 열리기를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터질듯한 긴장감 속에 경기 시작을 울리는 휘슬이 울리고 90분. 2대0 폴란드 완파. 그 짧은 승리의 순간이 4천700만 국민에게 선사한 것은 '월드컵 본선 첫승'이라는 표면적인 경기 결과가 아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지난 48년 동안 전 국민은 '월드컵 무승(無勝)'의 낙인과 월드컵 사상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한 상처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런 아픔은 순식간에 날아갔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찾아왔다.

민족과 언어, 종교와 피부색이 어떠하든 공정하고 깨끗한 룰만이 적용되는 월드컵의 세계에 고요한 동방의 나라가 발을 들여놓은지 반백년만에 깨질 대로 깨진 월드컵 콤플렉스를 깨끗이 치유하는 신명난 유월의 밤이었다.

물론 한국발 축구 신화(神話)는 계속돼야한다. 오는 10일 대구에서 열릴 대미전에서도, 14일 인천에서 열릴 포르투갈전에서도 그옛날 화랑들이 보여주었던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의 영웅들이 오랜 시간 갈고 닦은 기량으로 '21세기판 동방의 기적'을 낳을 것이라 믿고 또 믿는다.

이날 태극전사들이 낚아챈 '월드컵 첫승'은 단순히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성과를 넘어선다. 우리의 스타들이 폴란드 골네트를 두 번이나 뒤흔들면서 전세계를 향해 쏘아올린 것은 바로 자신감과 함께 '다시 뛰자'는 결의를 담은 희망이 아니었을까싶다.

사실 개화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해 강제적으로 나라문을 연 이래 거의 50년마다 일제 치하, 민족동란 그리고 경제식민지(IMF)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반백년마다 되풀이되는 민족의 수난은 '50년 주기 악몽설'에 시달렸고, 올해도 그 50년 악몽설의 태풍권에 들어있다고 할 정도로 우려할만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들이 불거졌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라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순식간에 '세계속의 코리아'로 도약할 수 있다는 강한 영감이 녹색 축구장에서 피어오른 것이다.

사실 어떤 나라, 어느 민족도 끊임없이 세계 역사를 지배하는 나라로 영원한 영광을 누릴 수는 없다. 우리나라처럼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단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범하지 않고 평화롭게 나라를 지켜온 민족이 지구촌 다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특성만으로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도, 세계속의 경쟁력을 갖출 수도 없다. 평상시에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드물게 찾아오는 이런 영감의 짧은 순간을 누릴 수 있다.

"신의 신비스런 작업장인 역사에서 무심하고 평범한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일어난다. 그런 역사의 장에서 잊을 수 없는 고귀한 순간이란 지극히 드문 법이다. 수없이 많은 평범한 일들이 스러지고 난 뒤 인류의 별같은 진짜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대문호 괴테가 얘기했던 역사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02년 6월4일의 월드컵 첫승이 아닐까. 다시한번 더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순간은 다가오겠지만 단순히 축구경기로 끝내기는 너무 아쉽다.

월드컵 축구로 끌어당긴 전세계인의 이목을 우리 문화로 끌어당기는 방안은 없을까. 6일, 8일, 10일, 29일 네차례 월드컵 경기를 치를 대구가 반만년 역사를 지닌 문화도시라는 사실을 전세계로 마케팅할 절호의 기회이다.

7, 8, 9일 사흘간 두류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열릴 오페라 투란도트를 찾아 투란도트 공주를 사랑하는 칼라프 왕자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못 이루고'(넬슨 도르마)와 그 칼라프 왕자를 연모하여 죽음을 택하는 하녀 류의 애절한 아리아에 가슴도 적셔보자.

한일 양국의 판소리꾼들이 부르는 '현해탄에 핀 매화'(대구문화예술회관, 10, 11일)를 즐기거나 신천환경미술축제, 대구아트엑스포(문화예술회관)와 전통복식2천년전(국립대구박물관)도 찾아보자.

대구시민부터 대구문화를 알고 즐겨야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원더풀 대구'를 연발하는 구전효과(word of worth)도 기대할 수 있다. 가자, 대구시민이여 문화 현장으로!

최미화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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