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용문'에 오르려면…

옛날 중국 사람들은 황하(黃河)의 이무기가 30년을 수양하고 공부해야 득도한다고 믿었다. 30년 공부가 끝나는 날 황하에서 물살 세기로 이름난 용문(龍門)에서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용이 돼서 하늘로 오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등용문(登龍門)의 전설이다. 중국 사람들이 최고 지도자인 임금을 용에 비유한 것은 물론 고귀하다는 의미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 전설에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통치자가 되려면 최소한 30년동안 자기를 성찰하고 세상 이치를 공부하는 준비기간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실 요즘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신통하게도 등용문의 과정과 맞아 떨어지는 것만 같다. 덕망있는 국회의원으로대략 7, 8선(28~32년)의 경력을 쌓아야 대통령 후보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그렇고 더구나 후보지명후 선거전을 치르고 당선되는 과정이마치 용문에서 마지막 관문을 뚫고 등천하는 용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착각마저 갖게 된다.

요즘 우리 대통령 후보들이 지방선거 지원하느라 곳곳을 누비며 던지는 언행을 보면 뭔가 불안하고 아슬아슬한 느낌이다.후보이기 이전에 정치 원로로서 한마디씩 던지는 무르녹은 말씀을 우리 같은 민초들이 귀를 씻고 들어도 시원찮을 판에 '깽판…'은 뭐며 '빠순이'는 또 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이 나라 백년대계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고담준론의 감동은 간곳 없고 말꼬리 잡고 물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면 이 양반들이 과연 준비된 대통령감들인지 궁금하다. '말은 영혼이 담기는 그릇'이라 했거니와 이 말대로라면 요즘 거친 말씀 마구 내뱉고 다니는 후보들의 모습이 실망스럽다.

옛 말씀에 지도자(선비)는 모름지기 그 언행이 '따뜻하되 근엄해야 하며 위엄이 있되 사납지 않아야 하고, 공손하되 비굴하지 않아야 한다' 했다. 지금 우리의 대선후보들의 언행을 이 잣대로 가늠해보면 어떤 수준일까.

우리 정치는 요즘 한창 거꾸로 가고 있다. 파파노인에서 코흘리개까지 한 마음이 되어 월드컵 축제 치르느라 여념이 없는데 유독 정치만은 국회 원(院)구성도 못했다. 원을 구성하지 않은 탓에 국회의원은 있되'국회는 없는' 그런 희한한 꼴을 연출해놓고는 연일 대통령후보 이미지 높이랴 지방선거 지원하랴 제 앞만 챙기고 있으니 그 후안무치에 할 말이 없다.

언제 우리 국회가 국민과 함께 한적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그렇지 모처럼 월드컵행사에 앞장서지는 못할 망정 판만 깨고 있는 모습은 참 보기 민망하다. 지난 4일 부산에 내려간 한나라, 민주 양당의 대선후보들이경기장에서 아는 체 해도 관중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정치가 지금 국민들로부터 왕따당하고 있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 된다.

유권자의 표심(票心)이란 게 묘해서 억지로 빌붙어 구걸한다고 표가 모이는 게 아니라 당당할 때 오히려 표가 되는 법이다. 귀족 이미지 바꾼다고큰 절 넙죽하고 주름살 제거한다고 보톡스 주사맞는 그런 식의 해프닝을 벌이기보다 때로는 자신만이 갖고 있는 '영혼의 목소리'로 유권자에 파고드는것이 표가 더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월드컵 첫승리의 기쁨을 48년만에 만끽하고 있다. 막연하나마 "이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성취감이 근래 어느때보다도 충만해 있다. 이런 때일수록 지도자가 앞장서서 국민을 한묶음으로 단합시키고 신바람나게 일하게끔 북돋우어야 한다. 큰 정치란 지금같이 어려운 때에 국민과함께 하며 국민의 기(氣)를 살리고 신명나게 하는것이지 결코 네거티브식 비방정치를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차피 연말 대선에서는 이변이 없는 한 지금 뛰고 있는 이(李).노(盧) 두 후보 중 한사람이 당선될 것인 만큼 우리는 이들에게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지금까지 중언부언 따가운 소리를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기대가 그만큼 크기 때문인 것이다. 부디 30년 수신(修身)하는 '용의 몸가짐'으로 선거판을새로 이끌었으면 한다.

남 헐뜯어 표모으기보다 '21세기 한국 청사진'의 웅대한 비전으로 유권자를 감동시키는 그런 멋진 후보로 거듭 태어나 선거전을치르기를 두 후보에게 바란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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