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러시아의 충격

이번 월드컵 축구는 개막전부터 이변과 악연의 연속이다. 아예 상대도 안될 것으로 믿었던 세네갈이 프랑스를 깨뜨린 것부터 시작해서 영국이 최강 아르헨티나를 격파하고 일본이 '북극곰' 러시아를 물리쳤나 하면 한국이 폴란드를 이기고 미국과 맞붙게 된 것까지…. 경기 당일까지 누구도 상상치 못하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경악케 된다.

▲이번 대회는 이상하리만큼 오랜 악연이 맞대결로 나타난 경우가 많다. 개막전부터 프랑스가 식민지였던 세네갈과 불꽃 튀기는 접전끝에 분루를 삼키더니 잇달아 1982년 포클랜드 해전의 원한 깊은 영국·아르헨티나의 한판 승부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1천여명의 전사자를 낸 전쟁의 앙금을 간직한 두 나라에게 이번 경기는 단순한 축구경기 이상의 것이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유력잡지 헨테는 '잉글랜드여 날 위해 울지 말아요'라는 표제로 이 경기만은 이겨야 된다고 승리를 다짐했고 영국 역시 '98년 패배를 설욕하자'고 맞섰지만 결과는 영국의 승리, 아르헨티나는 통곡했던 것.

▲전통적으로 축구 강국인 '북극곰' 러시아의 패배는 모스크바 시민에겐 큰 충격이었다. 1905년 러·일 전쟁당시 일본 도고(東鄕平八郞) 제독의 돌격함대에게 당시 세계 최강의 화력을 갖춘 러시아 극동함대가 무너지더니 이번에는 "햇병아리에게 축구마저…" 하는 한(恨)이 한꺼번에 폭발한 게 아닐까.

얌전하기로 소문난 모스크바 시민들이 수십대의 차를 불태우고 사람이 죽기까지 한 난동을 일으킨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에 열받은 탓이란 생각도 든다.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기업들이 '한·미 경기에서 차라리 한국이 이겼으면…'하고 한국승리를 기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미국계 기업은 한국승리 기원 이벤트를 벌이나 하면 어떤 업체는 경기 당일 오후 8시이후 맥주1병씩 공짜서비스 등 눈치보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이들이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워낙 한국의 축구열기가 대단한데다 지난 동계올림픽때 김동성 선수가 오노 선수에게 메달을 뺏겼다고 믿는 한국인들이 혹시 어떨가 하는 우려 때문이라니 아무래도 오노의 무리한 금메달 차지가 자기네들 보기에도 찜찜한 모양이다. 어쨌든 갖가지 사연이 얽히고설킨 세계 각국이 둥근 공을 둘러싸고 각축하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감동적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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