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열규 세상읽기-스포츠에도 국민복지 생각하라

88 올림픽 당시, 그러니까 새로운 국가적 이적(異蹟)이 이미 찾아 온 듯이, 그리고 또 새로운 범국민적인 기적이 바야흐로 닥칠 듯이 온 나라 안이 법석을 떨어대던 그 당시의 일이다. '일인 당 3억 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이 숫자는 금메달을 따 낸 선수 하나를 길러내는 데 든 비용이다. 이건 정부 당국의 공식발표다. 지금으로서는 모르긴 해도 4억 원쯤 될 테니, 기가 찰 일이다.

들어도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서 그 당시 필자는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 이걸 따졌다. 이것, 저것 시비를 벌인 끝에, '이대로는 나는 금메달에다 대고 박수를 칠 수 없다'로 결론을 맺었었다. 다들 짐작들 하겠지만, 태릉 선수촌에서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데 든 경비가 3억윈이었다.

그 때, 필자는 그 비용의 일부나마 할애해서 스포츠의 대중화를 위해서 사용할 생각을 왜 진작 못했느냐고 묻고 나섰다. 도시의 골목에는 청소년들을 위한 어떤 운동 시설도 없는 터에 그리고 초등학교 및 중고교 운동장은 그저 황당한 빈터인 꼴에 , 왜 엘리트에게만 집중적으로 또 배타적으로 투자했느냐? 라고 물음을 던졌었다.

그리곤 스포츠 시설의 대중화의 차원으로 나아가서는 스포츠의 범국민적 복지 차원으로 스포츠 정책을 바꾸는 그 때까지, 88년 당시에 선수들이 따낸 그 귀한 메달에 대해서, 열렬하게 쳐서 마땅한 박수를 보류하겠다는 것이 필자의 논지였다.

한데도 그 뒤 지금까지 15년 가깝게 달라진 게 있는 것 같지 않다. 여전히 엘리트 위주의 정책이 악착같이 고수되고 있다. 그러기에 '월드 컵'에 대해서 필자로서는 유감스럽게도 또 아쉽게도 일방적으로 박수만 칠 수는 없다. 프랑스나 이태리에 가보면 안다. 시골의 작은 마을에도 잔디 구장이 있기 마련이다.

직업별로 또 동호인별로도 그들의 잔디구장을 향유하고 있기도 하다. 거기서 마음껏 공을 차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나름으로 선수고 또 스타다. 우리 각급 학교 운동장은 여전히 흙탕이다. 그 현실 앞에서 우리는 부끄러워해야 한다. 공은 못 차고 땅을 쳐야 한다. 새삼 따져 보자. 스포츠만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도 드물다. 한편, 스포츠만큼 사회복지가 외면당하고 있는 분야도 드물다.

이 기묘한 모순, 이 요상한 당착을 왜 언제까지나 모른 척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골프, 피트니스 클럽, 호텔이나 그 밖의 옥내 수영장…. 이들은 어느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리고 있는 계층이 아니고는 언감생심이다. 하다 못해 테니스까지도 그 지경이다. 그러기에 스포CM이야말로 계층별, 소득 별로 빈부의 차가 가장 격심한 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정의는 사뭇 멀고 또 멀다.

우리의 스포츠의 대중적 차원에 걸친 사회 복지화의 수준은 16강은 어림도 없다. 몇 강이나 될까? 글쎄 모르긴 해도 예선 통과도 어려운 수준일 것이다. 그저 국민더러는 소리쳐라? 박수 쳐라! 그저 보기만 해라! 이럴 수는 없다. 한데도 국민 대다수는 월드컵을 관전하면서 환호하고 응원하고 있다. 정부는 물론 대한 체육회도 월드컵 조직 위원회도 이에 보답할 줄 알아야 한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해서라도 부디 생각을 고쳐 먹기 바란다. 그 소망이 있기에 나 같은 청개구리도 TV 앞에서나마 이따금 박수를 치는 것이다. '붉은 악마'들의 열정의 16분의 1이라도 좋다. 이제 스포츠의 사회복지화를 위해서 관계된 당사자들이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김열규(인제대 교수·국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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