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굶어 죽은 노모의 유언

올해도 5월은 한판 카네이션 잔치로 그렇게 지나갔다. 그 많은 자식들이 하루 동안 효도대열에 참여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그리고 6월 엊그제, "공부 못한다고 꾸짖기만 하는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대학교수 아버지에 반감을 가진"대학생 아들이 아버지와 할머니를 살해하고 또 그 범죄를 숨기기 위해 집에 불까지 지른 '패륜'이 있었다.화장터엔 불효자가 없다

불효자는 화장터엘 가보라고 했다. 거기에선 제 아무리 막돼먹은 불효자식도 효자가 된다. 불구덩이 속으로 어버이의 시신을 들여보내는 순간의 처절한 울부짖음, 그리고 잠시 뒤 되돌아온 재 앞에서 넋 잃은 사람들, 그 60분의 시작과 끝에서 터지는 통곡의 합창에서 불효자는 눈씻고 찾을래도 없다.

'굶어 죽은 노모' 아들 책임이 더 크다는 솔로몬의 심판이 이달초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에서 있었다. 지난 1월 경기도 일산의 한 주택에서 칠순의 할머니가 굶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망 당시 체중이 20㎏이었고 위와 장은 비어 있었다. 경찰은 골반을 다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 노파에게 9일동안 아무런 음식물도 주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

아들부부 모두를 존속유기치사 혐의로 입건한 경찰은 부부중에누구를 구속할지 검찰에 물었다. 검찰은 밖에 있는 아들보다 전업주부인 며느리에게 시어머니 봉양책임이 있다며 며느리를 구속했다. 그리고 아들에게 징역 5년, 며느리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단순사건으로 쉽게 끝날 것 같던 이 사건 재판은 그러나 재판부가 넉달동안 심사숙고를 거듭한 끝에 검찰의 판단을 뒤집었다.아들에게 징역3년을 선고, 법정구속하고 며느리에겐 징역3년.집행유예5년과 함께 풀어준 것이다.

"아들은 고부간 갈등이 심한 줄 알면서도 방관했고,평소 자신이 치우던 노모의 대소변 봉투가 열흘이 넘게 나오지 않았음에도 건강상태를 확인하지 않는 등 '자식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렸다"는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던 것이다.부끄러운 '치매'대책

우리가 이쯤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이 사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은 이게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짓거리가 도덕적.법률적으로 '패륜'임은 당연하다. 다만 우리가 이 노모의 아들이었다면, 며느리였다면 어찌했을까?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문해 보자는 것이다.

며느리가 음식을 해가도 던져버리기 일쑤였다는 원초적인 고부갈등, 그 갈등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아들의 처량한 신세, 그리고 무엇보다 치매증상까지 보여온노모와의 괴로운 동거생활의 한복판에 우리가 서있다면 과연 우리도 그 불효(不孝)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런 상황은 지금 어느집에서나 닥쳐와 있거나 닥쳐오고 있다.

이 사건을 떠나서, 우리는 '병수발 10년에 효자없다'는 옛말에 동의하게 된다. 그 숱한 노인병 중에서 '치매'는 유일하게도 '형제간의 우애, 부부간의금실을 갈갈이 찢어놓는' 병이다. '환자에겐 천국, 가족에겐 지옥'이라는 참으로 난감한 병이다.경험자들이 말하는 치매의 주증상은 다식(多食)과 무단가출에 자식.며느리 흉보기다.

그리고 가족.친지들을 부르는 촌수(寸數) 또한 뒤죽박죽이다. 겁이 날 정도로 먹으면서도 객지에 나간 막내아들이 올라치면 "네 형수가 밥 굶긴다"고 흉을 본다. 슬그머니 집을 나가 길거리를 배회해 온 집안을 벌컥 뒤집어 놓기 일쑤다. 노모 밥 굶긴다는데 형제간에 싸움 안날리 없고,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어머니 나가시는 것도 못봤냐!" 부부싸움 안날 리가 없다. 남남끼리 만난 며느리들 등돌려놓기 예사요, 시누.올케간 오빠.여동생간 원수만들기도 흔한 일이다.

환자를 병원에 모시느냐, 집에서 돌보느냐 하는 문제도 자칫 심각한 집안갈등을 부른다.결국 치매환자가 있는 집안의 경우 그 증상이 치매임을 때맞춰 읽어내지 못하면 그동안의 집안싸움은 불가피하고, 치매로 읽어냈다 해도 "그 병이 온 집안을 어떻게 찢어놓는지에 대해"가족끼리 양해받아놓지 않으면, 그리고 병구완에 대한 경제적 대책이 없으면 역시 '갈등'으로 치달아 간다.

이런 의미에서노모를 굶어죽게 한 경기도의 40대 아들은 지혜롭지 못했다. 치매노모를 병원에 모실 형편이 못됐다면 아내의 편에 서서 다독거리면서 노모의 건강상태를자주 챙겼어야 했다.

그는 치매수발에 지친 아내와 비정상인 어머니 사이에서 중립만 지키면 되는줄 잘못 알았던 것이다. '긴병에 효자없다'는 말을 위안삼아"차라리 돌아가셨으면"하고 한때나마 넋두리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재판부가 아들과 며느리의 책임의 경중(輕重)을 놓고 고민끝에 아들의 죄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은 그래서 옳다고 보는 것이다.

또 하나, '사회복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사건은 복지제도와 시설의 미비가 빚어낸 사건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노인인구 비율이 7%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전국의 치매노인이 30만명을 넘어선 마당에도 치매전문병원은 있다고 하기조차 부끄럽고, 의료보험 혜택은 더더구나 없다.

대구에 서너군데, 경산.청도.안동 등지에 한곳씩 있는 치매병원의 입원비만 대략 한달에 100만원이니 어쩌면 이 사건도 무전유죄(無錢有罪)인 셈인가?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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