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수험생들은 숨이 가쁘다. 새 학기가 시작된지 벌써 석달여. 수능시험은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공부는 뜻대로 안되고 성적도 마음만큼 오르지 않는데 학교든 집이든 '공부하라'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잠을 자도, 휴식을 취해도 수험생의 가슴 속은 이미 강박관념이 가득하다.
지금쯤 수험생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바로 이 강박관념과 여기서 비롯된 자신감 상실, 무력감, 좌절감 등이다. 여름 더위나 쏟아지는 졸음은 비할 바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생산성이 없다.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시기인 것. 그러나 정작 학교와 가정에서는 수험생들의 이런 상황을 간과하기 십상이다. 수험생 스스로도 혼자 끙끙 앓기만 할 뿐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어렵다.무기력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정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입시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죽음보다 더한 만성피로
고3생인 A군. 5월 이후로는 계속 피곤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이유는 금세 드러난다. 아침 6시 50분까지 등교해서 방송수업, 정규수업, 보충수업 등을 다 받고 나면 저녁 6시에 저녁 식사. 이후에는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이다.
3, 4월은그런대로 견뎠지만 5월 들어서는 밤낮 없이 잠만 쏟아지고 하루종일 힘이 없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학급의 다른 학생들도 태반은 아침부터 졸기 시작해 비몽사몽간에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어떤 반에서는 자율학습 시간에 당번을 정해놓고 감독 선생님이 오시면 깨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찍 집에 가고 싶기도 하지만 집에서도 마음은 안 편하니 차라리 학교에서 잠자는 게 낫다는 거죠".
이같은 만성피로도 밤이 되면 한결 풀리는 게 대부분 수험생들의 상태. A군은 "학교에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집에 와서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면 이상하게도 쏟아지던 잠이 달아납니다. 공부를 좀 하거나 이래저래 꾸물거리다 보면 1시를 넘기는 건 보통이고 2시 이후에 자는 날도 많습니다. 제대로 누워 자는 시간은 4시간 안팎이죠".
이런 생활이 석달 이상 지속되었으니 대부분의 수험생들로서는 피로와의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한 고3 담임은 "해마다이 시기는 절반 가까운 수험생이 입시 레이스에서 탈락하는 시점입니다. 성적이 어느 정도 나오는 학생은 그럭저럭 참고 견디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은 하루하루를 괴로워하지요.
한창 피로를 느끼는 지금이야말로 담임 선생님과 부모의 관심, 상담이 필요한 시기입니다"라고 말했다.그는 특히 힘들어하는 학생을 살펴 생활 전반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주중에 하루 정도는 일찍 집에 가서 푹 쉬도록 배려해준다고 했다.매일 붙잡아두는 것보다 오히려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것.
대학교 2학년생 아들을 둔 Y씨는 고3 때 가장 신경 써서 챙겨 준 부분이 바로 잠이라고 말했다. 학교 자습을 마치고 집에오면 밤12시 정도인데 가능하면 바로 잠자리에 들도록 했다는 것. 아들의 방에 불이 꺼진 것을 확인한 뒤 자신도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아침에는 6시20분쯤 깨워 10분만에 등교준비를 시킨 뒤 집을 나서고 밥은 등교길 승용차 안에서 먹도록 했다는 것. 이렇게 수면 시간을 최대한 확보해준 결과 피로가 많이 줄었고 그해 모 대학 의대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도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자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수면 부족이 장기화하면 만성 피로로 이어지고 만성피로는 학습의 생산성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 나아가 공부 의욕과 자신감 상실로 이어진다는 게 공통된 견해였다. 지금쯤 가정에서도수험생의 상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면 털어놓고 얘기하며 해결책을 찾는 것이 좋다.
▨피로를 풀어야 장기 레이스가 가능하다
수험생이라면 다른 데 절대 눈을 돌리지 말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1년도 안 되는 시간이니 지금만 참고넘기면 삶이 달라진다"는 얘기는 수험생 학부모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보통의 고3생이라면 3월 이후 수능시험까지 10개월여의 장기 레이스를 쉼없이 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잘 논다는 건 교사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얼마나 오래 공부하느냐보다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하느냐가 생산성 향상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지적 유연성과 탄력성을 요구하는 수능시험 대비를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토.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공부를 하는 학생이 노는 학생보다 성적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주일 내내 책상을 지키고 앉아서는 공부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고3이 돼도 주기적으로 공부 외적인 취미나 건전한 오락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고 공부의 집중력을 높이는데도 효과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토요일 오후 정도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나 비디오 보기, 책읽기, 간단한 컴퓨터 게임 등으로 보내는 여유를 갖는 것이 좋다.
너무 지쳐 아무런 의욕도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져 있다면 수험생 스스로 주말 여행을 계획해보는 게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 산이나 바다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기분을 바꾸고 새로운 활력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많은 시간을 어느 한쪽으로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 사고도 편협하고 융통성이없어진다. 결정적인 순간에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수험생 대부분이 이런 경우다.
한 국어교사는 언어영역 때문에 고민하는 수험생이라면 주말에 산에 올라가 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적당히 땀을 낸 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멀리 들판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해보는 것이 하루종일 교실에서 언어영역 문제집을 푸는 것보다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었다. 일정 시간 공부에 몰두했다면 그 만큼의 빈 시간이 있어야 습득한 지식이 자기 것으로 머리 속에 제대로 들어온다는 이치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적절한 운동을 할 때 가장 잘 해소된다. 특히 수험생들의 나이 때는 일정 시간 운동을 해줘야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모의고사를 치를 때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조여드는 증세를 심하게 느끼는 학생은 그 원인이 운동부족인 경우가 많다. 수능시험의 승부처가 되는 마지막 한두달에전력을 쏟기 위해서도 지금쯤 적당한 체력관리가 필요하다.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시기
윤일현 일신학원 진학지도실장은 담임을 할 때 3월 첫 모의고사를 치는 날 답안지에 마킹하는 수험생들의 동작을 세세히 살펴 기록했다고 한다.자신 있게 표기를 하는 학생도 많지만 손을 떨다가 자꾸 실수를 하고, 몇번이나 답안지를 바꿔달라는 수험생도 적잖다는 것. 이런 학생들은 상담을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심리 치료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심한 학생은 대부분 부모가 극성스럽고 매사에 간섭이 심한 경우가 많다"며 "그런 부모는 모의고사 성적이 조금만 나빠지면 가만히 지켜보지 못하고 수험생보다 더 불안해하며 성적이 오를 때까지 잔소리를 계속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 수험생은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지 못하고 늘 불안해하며 매사에 자신감을 잃기 쉽다며 학부모도 자신의 태도를 한번씩 되살펴야 한다고 충고했다.위기의식은 단기적으로 긴장감을 갖는데 좋은 방법이 된다.
수험생에게도 마찬가지라며 늘상 자극하는 학부모가 많지만 장기적으로는 스스로의 잠재 능력을 사장시키는 결과를 낳기 쉽다. 누구든 잘 했을 때 칭찬 받고 잘못 했을 때 위로와 격려 받기를 좋아한다. 상상력과 창의력, 잠재능력의 발휘는 칭찬과 격려속에서 가능하고 피로를 이겨내는 최선책이 되기도 한다. 수험생이 입시라는 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주위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도움은 바로 칭찬과 격려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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