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하간 시끄럽다. 올 봄 초부터도 그랬다. 겨울이 가고 세상이 기지개를 켜자 아파트 주변이 술렁거렸다. 아파트 주변에 가게들이 새로 개업하면서 가게 선전을 하려고 이벤트회사에 내레이터 모델을 구한다. 그 바람에 점심 때쯤부터 오후 5시까지 내레이터 모델들의 마이크 목소리와 소찬휘의 티어즈가 아파트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먹고 살려고 장사하겠다는데야 뭐라 할 말이 없을 것 같지만 조용해야 할 주거지에 쿵짝쿵짝 울리는 음악이 반드시 올바른 것만은 아닐 성 싶다. 하긴 아파트 주변만 그러랴. 그리고 가게집들만 그러랴. 휴대폰 판매하는 가판대도 시끄럽기는 마찬가지고 시내 길거리 또한 가무의 광경으로 뒤덮여있다. 내레이터 모델들의 목소리가 잦아들 때쯤 이제는 타이탄이 나타났다.
피자 배달집 티코도 아니고 개업한 숯불갈비집 타이탄도 아니다.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숯불갈비 3천원 대신에 후보들의 사진과 선전문구를 도배한 타이탄이 아파트 주변을 또 다시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것도 오후시간에 맞추어 확성기로 아파트 주변을 울리는 송대관의 네박자 노래를 듣다 보면 소음권마저 박탈당한 우리들한테 선거권이 무슨 말이냐 싶은 생각이 문뜩 떠오른다.
우리의 선거수준이 전국노래자랑 수준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싶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구 월드컵 경기장을 달구었던 응원은 소음권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스포츠가 정치를 압도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랬다. 붉은 악마와 시민들의 열광은 인구밀집지역인 아파트를 뒤흔드는 소음과 분명히 달랐다.
후자가 생존의 광경이라면 전자는 문화적인 광경이었고 후자가 주최측의 일방적인 행위였다면 후자는 스스로 문화를 만드는 자발성의 축제였다.
아파트 동마다 수위아저씨들이 선거후보합동연설회에 나오라고 안방까지 찾아와 시민들을 독려하는 전근대적인 동원문화와 달리 후자는 비록 스포츠영역에서이지만 주체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 스포츠와 정치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의 경우 선거정치는 시민들의 익명성을 전제로 한다. 설령 선거후보합동연설회에 나가 땡볕밑에서 구경한다한들, 거기서 나는 구경꾼에 불과하다. 나의 것이라고는 달랑 투표용지 하나밖에 없다. 소음권을 선거권이라는 달콤하지도 않은 유혹으로 대체하면서 말이다.
선거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드러나지 않고 그저 동원된 그림자에 불과하다면 스포츠에서 나는 보디페인팅, 페이스페인팅을 하며 나를 드러낼 수 있고 일사병의 위험이 도사리기는 하지만 열광하는 나의 목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게 할 수 있다.
나를 음지에 가둬둔 채 나의 목소리, 몸짓, 행위를 보이지않게 하는 그 음지에 불쑥 던져진 투표용지가 어떻게 선거권일 수 있고 또 선거권이라는 말로 둔갑해 태연하게 길거리 플래카드에 올라갈 수 있을까.
스포츠가 정치를 압도한 이유는 어찌 보면 간단하다. 군사통치가 끝난지 10년이 넘었어도 정치는 여전히 시민들이 떠들고 소리치며 함께 행위하고 말하는 능력을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시민들이 아직도 그런 능력을 갖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시대착오적이다.
정치는 바로 나라는 존재, 나의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북돋우고 나의 목소리를 음지에서 경기장의 양지로 끌어내, 데모크리토스의 말처럼 시민들에게 위대하고 빛나는 일을 성취하는 방법을 가르쳐야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시민 한사람 한사람은 표 들러리나 그림자가 아니라 이미 주권국가가 아닌가.
따라서 스포츠처럼 시민들을 한껏 뽐내게하지 못하는 정치가 스포츠를 한 치 앞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현상이다.
가톨릭대교수·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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