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월드컵증후군 예방법

포르투갈을 꺾고 '한국 16강'이 확정된 다음날인 토요일자 전국 신문의 1면사진 중 압권은 '박지성과 히딩크의 포옹'장면이었다. 후반25분 승리의 골든골을 넣은 박지성이 히딩크에게로 달려가고 히딩크가 두팔을 벌려 꽉 껴안기 직전의 이 사진은 마치 "아버지" "오! 내아들", 이산부자(父子) 상봉의 감동 그것이었다.

히딩크가 그 무명(無名)의 재능을 발굴해내지 않았다면 박지성의 그날은 없었을 터였다. 그날밤은 그렇게 대한민국이 통째로 집단흥분증후군에 걸렸었다.

▲집단흥분이 도(度)를 넘으면 전쟁이 된다. 1970년 멕시코월드컵을 한해 앞둔 엘살바도르-온두라스 간의 중남미 예선전. 멕시코에서의 3차전에서 엘살바도르가 승리한 직후, 승리의 흥분을 삭이지 못한 '엘'이 온두라스의 주요도시들을 폭격했다.

온두라스는 축구에 지고 전쟁에 졌다. 그게 한(恨)으로 남아 있다. 축구가 얼마나 좋았으면 그럴까? 거꾸로 전쟁이 축구싸움으로 비화된 것이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월드컵전쟁이다.

▲월드컵에서의 그룹 익사이팅 신드롬(Group Exciting Syndrome) 즉 '집단흥분증후군'은 '축구가 쌓인 불만을 대리만족의 형태로 폭발기회를 제공'하는데서 생겨난다고 전문의들은 설명한다.

그동안 한국민들이 무슨 불만이 그리 컸길래 축구공 하나에 이토록 흥분하는가? IMF이후 세상은 더욱 험악해지고, 부자만 더욱 부자되고, 정치는 X판이 되어온 때문일까? 한골의 흥분은 교감신경을 자극, 신체를 가열시킨다.

심장박동과 호흡이 에스컬레이트되고, 눈알이 휘둥그레 커지고 침이 마르는 현상들이 불과 2~3초만에 벌어지기 때문에 심장마비나 쇼크로 병원에 실려가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TV를 보던 40대 남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한데 이어 곳곳에서 '집단흥분'에 의한 사고소식이 들려오고있다. 태극기를 너무 흔들다가 어깨뼈가 빠졌다거나 입을 너무 크게 벌려 아래턱이 빠지거나 넘어져서 다치는 경우는 약과다. 문제는 호흡곤란.심장마비.탈진 등 쇼크 증세를 보인 붉은 악마들이 속출한다니 걱정이다.

폴란드전에서 포르투갈전까지 서울시청앞, 광화문 광장 등에서 119 구급대에 실려간 서울의 붉은 악마들만 100명을 넘었다고 한다. 더구나 '군대에서 축구 시합했던 이야기'를 가장 싫어한다는 20대여성이 이 집단증후군에 가장 많이 걸렸다니 축구란 참 묘한 운동이다.

내일밤 또 이태리와 8강진출을 놓고 한판 붙는다. 이태리는 더 강적이다. 붉은 악마들의 집단흥분은 더할 것이다. "마음 졸이며 꼼짝않고 보지말고 몸을 움직여가며 관전하라.

평소에 뒷목이 뻐근한 사람, 다혈질, 열받으면 혈압이 확오르는 사람은 혼자서 응원하지 말라. 술은 금하고 물을 자주 마셔라. 껌을 씹는 것도 좋다. 그리고 패배했을 때 더 조심하라". 의사들의 충고다.

강건태 논설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