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의 작은 키에 가냘픈 몸이지만 이정옥(32)씨는 남성들도 힘들어하는 암벽등반을 능숙하게 해내는 '스파이더 우먼'이다. 한동안 대구시연맹주최암벽등반대회 1위 자리를 휩쓸었고, 지난해 세계 각국의 암벽등반가들이 출전한 말레이시아 월드컵대회에도 출전한 이씨는 국내 암벽등반의 신기원을 열어가고 있는 베테랑 여성등반가다.
학창시절의 이씨는 남보기에도 허약해빠진 소녀였다. 100m 단거리는 22초대로 느림보였고, 매달리기나 윗몸 일으키기 한번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운동에 젬병이었던 그가 10여년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의 변신은 등산에서 비롯됐다. 틈만 나면 산을 찾아 체력을 키웠던 그는 지난 96년 암벽등반에 입문했다. 암벽등반을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스물일곱 결혼을 앞둔 나이였지만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 해보자는마음으로 암벽을 타기 시작했다.
등산이 그를 변화시켰듯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암벽등반에 도전한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하루에 2시간이상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 도저히 불가능하게 느껴지던 암벽등반도 차츰 익숙해졌다.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 암장(巖場)을 개척하면서 체계적으로 등반을 배웠고,등반가인 남편 박본현(41)씨도 만나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마냥 순조로운 것만 아니었다. 발목 부상도 있었고, 키가 작아 암벽등반에 핸디캡도 많았다. 그러나 이씨는 그냥 주저앉지 않고 한계를 극복해나갔다.틈만 나면 각양각색의 홀드(인공암벽의 손잡는 부분)에 매달렸고, 15m 높이의 직벽을 시간내에 올라가야 하는 지구력과 순발력을 길러 나갔다.
땀 흘린 결과여러 대회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면서 여성 암벽등반가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경기지도자 자격증(2급)과 전국에서 3명뿐인, 대구에서 유일한 여성 심판자격증(2급)도 갖고 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널리 보급하는 일이 그의 꿈이다. 지난 98년 남편 박씨와 함께 인공암장인 대구파워클라이밍센터(053-743-8850)를 연 이씨는 일반인들이 암벽등반을 손쉽게 배울 수 있도록 대중화에 나섰다.
4년동안 이 센터를 거쳐간 수강생만도 2천여명. 일곱살짜리 코흘리개에서부터 주부, 60대 노인까지 다양한 층에서 암벽등반을 배워 나갔다. 상업성을 배제한 탓에 수입은 변변치 않지만 오로지 개개인에 맞게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지도, 암벽등반이 레포츠로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제 암벽등반도 레포츠로 인식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오를 수 있는 안전하고 편리한 시설이 아직은 미흡합니다".
안동, 제천, 광주 등 전국 여러 곳에서 국제규격의 15m 인공암벽이 생겨났지만 대구에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서울에는 구청마다 주민들을 위해 이런 암벽을만들어놓을 정도. 이씨는 큰 돈 들이지 않고도 만들 수 있는 인공암벽이 대구에도 하루 속히 생겨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등반을 지도하면서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앤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는 이씨는 자기자신이 그러했듯 "신체조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꾸준한 연습을 통해 자신을 이겨나가는 것을 볼 때마다 더 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종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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