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지방선거가 끝이났다. 투표율 48.9%라는 냉랭한 선거결과를 보면서 130여년전 미국 흑인들이 서커스 구경하느라 투표권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남북전쟁이 끝난뒤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을 줘야했던 백인계층은 글을 읽을줄 모르거나 쓸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는다는 기상천외의 법률을 만들어 문맹자가 많은 흑인들의 투표권을 교묘히 박탈했다.
그뒤 글을 깨우치는 흑인이 늘어나자 이번에는 경제력이 약한 흑인들의 가난을 악용, 인두세(人頭稅)란걸 만들어 납세 영수증을 갖고와야 투표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견제했다. 자연스럽게 흑인들 사이에 '반드시 흑인 대표자를 의회로 보내자'는 운동이 일어나면서 끼니를 굶어서라도 인두세는 내고 영수증을 챙겨 선거에 대비했다
그러자 백인들은 흥겹기 좋아하고 축제분위기에 약한 흑인들의 감성적 약점을 이용했다. 마을에 백인 후보측 민주당원이 서커스단을 끌고와 축제판을 벌여 서커스 입장료 대신 인두세 영수증을 갖고오면 공짜라는 선전을 했다.
공짜아닌 공짜구경 유혹에 너도나도 서커스판에 몰려들어갔고 막상 선거당일 투표소에 흑인 유권자는 한명도 나타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런 지역에서는 흑인의원을 배출하지 못했고 그 결과 미국 흑인들의 인권회복은 오랫동안 지연됐었다.
이 거짓말 같은 역사적 사건은 유권자의 주권의식이 희박할때 선거의 피해는 유권자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의 선거역사에서도 8·15 해방직후 문맹자가 대부분이 었던 시절 아라비아 숫자조차도 어렵다고 아예 막대기를 그려넣어 기호 표시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막대기 한개 그려넣은 기호1번 후보는 '코도 하나요 입도 하나요'라고 외치고 다녔고 막대기 두개를 단 후보는 '눈도 두개요 귀도 두개요'라며 유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야당 후보 유세날 학생들을 토끼잡이에 동원시켜 친야당 청중을 빼돌린 부패정권의 부끄러운 역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문맹자의 선거권 박탈도 없었고 인두세 영수증처럼 월드컵 입장권 없으면 투표장에 못들어오게 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투표율은 최저였다.
일단 4415명의 당선자중에는 뽑힐 만한 인물이 뽑힌 경우가 더 많을 것이란 전제아래 최저 투표율이 뽑아 놓은 결과를 놓고 생각해 보자. 전과자 471명, 소득세 종토세, 재산세 통틀어 100만원도 채 안낸 사람이 절반 가까운 2천60명, 지난 3년간 단 한푼의 세금도 안낸 사람이 265명이나 되는 선거결과는 다수 유권자들을 입맛 떨어지게 한다.
'거 봐라 찍어 봤자 그렇고 그런 사람 들 아니냐...'는 냉소도 없지 않다. 저조한 투표율과 무관심한 분위기속에 나오는 냉소적인 말이 또하나 있다.
바로 "기초의회 그거 뭐 필요해 없애버리지"라는 비판이다. 그런 부정적인 여론의 논리는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전국에 232개나 되는 기초의회가 있고 의원수만도 3485명이나 된다.
기초의회의원들에게 들어가는 세금은 회기수당(1일 7만원)과 의정활동비(월 55만원선)으로 연평균 1인당 1천2백여만원. 연간 4백억원이 넘는다. 의회청사 집세에다 의회소속 전문의원 인건비까지 계산하면 만만찮은 예산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광역시의회가 구의회기능을 겸하고 도의회가 군의회 기능을 맡으면 될텐데 그만한 예산·시설투자만큼 과연 효율성이 있느냐는 주장이다.
그런 무용론 여론이 나오는 이유는 10여년사이 지방의회 의원 550여명이 비리 등으로 구속되거나 의원직을 상실한 부패비리가 주된 이유들이다.
그러나 소위 풀뿌리 자치주의와 민주주의 요체는 기초의회에서부터 출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또한 출범 3기만에 선진국의 기초의회 수준을 곧바로 기대하는 것도 무리일지 모른다.
많은 예산이 들고 광역의회와 중복된 조직의 성격을 다소 갖더라도 기초의회의 건실한 발전은 필요하다. 다만 그러한 기대와 긍정적 평가에는 조건이 붙는다.
유권자가 표찍으로 가고 싶은 마음조차 안날 만큼 기본이 덜된 인물, 개인사업의 방패막이로 의원뱃지 달려는 인물, 당선 등원하자마자 비리로 구속되는 인물들이 더이상 나타나지 않을 것.
그렇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기초의회는 없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이번 기초의원 당선자들께는 그러한 무용론이나 불신을 깨끗이 씻어내주는 존경받는 의정활동을 기대한다.
김정길(본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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