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인간관계 바꿨다

"한국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는 순간 세대, 계층을 뛰어 넘어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월드컵이 닫혀 있던 온 국민의 가슴을 하나로 이어주고 있다.

한국대표팀 승리를 기원하는 4천700만 국민의 뜨거운 열정이 대화가 단절된 부모와 자식, 이름조차 모르던 이웃사촌, 서먹서먹하던 스승과 제자 등 우리 시대의 모든 갈등과 불신을 화합과 믿음으로 바꿔놓고 있다.

인천 월드컵경기장에서 한-포루투갈전이 벌어진 지난 14일. 대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찾았던 이문수(52.회사원.수성구 황금동)씨 부부.

맞벌이 부부로 바쁜 직장생활 탓에 지난 3,4년동안 가족간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졌지만 이날 만큼은 온 가족이 하나가 됐다.

이씨는 "대표팀이 결정적 슛찬스를 만들때 마다 온 가족이 함께 일어나 '대~한민국'을 외쳤고, 대표팀이 조 1위로 16강 진출을확정짓자 서로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며 "이날 이후로 한동안 멀어졌던 가족간의 정이 새록새록 다시 싹트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우방1차 아파트에 사는 류종훈(54.개인택시기사)씨는 "월드컵은 아파트 이웃사촌들의 보이지 않는 벽까지 허물었다"고 했다.

한국대표팀의 숭리로 경기가 끝나면 너나할 것 없이 집밖으로 쏟아져 나와 처음보는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가까운 호프집에서대표팀 승리를 자축한다는 것.

류씨는 "아파트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주민들은 '한국팀 8강 갈 수 있을까요'라며 자연스레 인사를 주고받는다"며 "아파트 입주10년만에 처음으로 이웃사촌의 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팀의 16강 진출이 확정된 다음날 아침 대구 수성구 시지여중 권길영(58) 교장은 수업시간 직전 각 교실로 연결된 방송실 마이크로'한국대표팀 파이팅,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 모든 학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이 학교 김신정(16)양은 "교장선생님 말씀이 끝나자마자 온 학교가 학생들과 선생님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했다"며 "평소 멀게만 느껴졌던 선생님들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시지여중은 한국-이탈리아전이 열리는 18일 교사, 학생이 함께 한국대표팀 8강을 기원하는 종이 축구공 만들기 행사를 개최, 서로간의거리감을 좁히기도 했다.

성서공단에서 섬유회사를 경영하는 신홍식(53) 사장은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한-미전이 벌어진 10일, 이날 하루를 임시휴일로 정해 종업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종업원 100여명이 주.야 24시간 교대하는 이 회사는 한국-이탈리아전이 벌어지는 18일 오후에도 조업을 중단, 종업원들이 회사내 기숙사에서 함께 월드컵 경기를 시청하기로 했다.

신사장은 "한국대표팀을 함께 응원하면서 모든 노사갈등이 한꺼번에 날아가버렸다"며 "대표팀 승리를 기원하는 뜨거운 염원이 모든 불신의벽을 허물고 온 국민을 하나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